신문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정부당국은 ESG공시기준을 당초 2025년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모든 상장기업에 의무적으로 도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 6월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서 IFRS S1(재무공시에 관한 일반적인 기준)과 S2(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시) 기준을 확정해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의무공시가 임박해 오자 그동안 잠잠하던 재계가 변화되는 공시환경에 부담을 느끼면서 공시 의무화 연기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2026년 이후로 공시 일정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공시 일정을 연기한 이유는 첫째, 국내 기업들이 ESG공시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국내 기업들의 ESG데이터 품질은 낮고 ESG공시를 위한 인력과 시스템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ESG공시 의무가 너무 빨리 시행되면 잘못된 정보 제공에 따른 과도한 법적 책임에 내몰릴 수 있다. 둘째, 미국 등 주요국도 ESG공시 의무화에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ESG공시 의무화 연기가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ESG공시를 수행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되는 측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수출위주의 경제구조와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에게 ESG대응은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과거 수년간 ESG 자율공시를 통해 선제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도입의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ESG공시 연기 다양한 문제점 야기
ESG공시 연기는 당장의 의무공시로 인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겠으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그동안 기업들이 발간해 온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상 공시내용에 대한 신뢰성 저하 문제다. 그간 기업이 자율공시라는 점을 악용해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와 관련해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 왔구나 하는 합리적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낮은 ESG데이터 품질에 기초한 평가기관들에 대한 신뢰성에도 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이 시장참여자들의 고도의 신뢰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ESG정보공시에 대해 앞으로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기업들에게 자칫 ESG전략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준비를 늦춰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ESG공시는 기업의 ESG경영을 촉진하고, ESG관련 위험을 예방하며 기회를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의 ESG공시가 연기되면 기업들은 ESG공시를 위한 데이터 수집 분석 보고 등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 또한 ESG공시를 통해 투자자들과 소통하고, ESG관련 이슈에 대응하며 혁신을 추구하는데도 무력해질 수 있다.
셋째, 국제사회에 한국의 ESG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한국은 유럽 미국 일본 등 주요국보다 ESG공시 의무화를 늦추고 있다. 이는 한국이 ESG공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문제를 숨기려고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특히 국제사회 주요 공급망으로서의 수출기업에는 큰 손실이다.
ESG공시 국제 표준과 규제 따라야
최근 정부는 "글로벌 정합성과 국내 여건을 고려한 기준을 제정하고 주요국과 국제기준을 참고하되, 우리 기업과 경제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논의를 거쳐 2024년 1분기 중 한국형 공시기준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ESG공시는 국제적인 표준과 규제에 따라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형 공시기준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서 제정한 IFRS S1과 S2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국형 공시기준이 또 하나의 기준처럼 여겨져서 특히 글로벌 공급망으로서의 수출기업에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와 기업에서 의무공시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SG공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 연기된 시간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만큼 ESG공시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