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유럽 정치를 뒤흔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023-11-15 11:42:50 게재
예를 들어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미국 다음으로 유태인이 많이 사는 나라(60만명)다. 프랑스에는 또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출신 이슬람 인구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 이 두 집단은 평소에는 평화롭게 공존하다가도 이스라엘에서 분쟁의 불길이 타오르면 적대적으로 돌변하곤 한다. 유태계가 이스라엘의 편에 선다면 북아프리카계 주민은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정치적 주장에 동조하는 편이다. 유럽의 역사도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과 긴밀하게 엮여 있어 문제는 한층 복잡하다. 순수한 혈통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유럽에 살아온 유태인들을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극우 민족주의의 반유태 정서는 20세기 나치즘과 유태인 대학살을 낳았다. 하지만 반유태주의가 우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극좌 또한 유태인은 자본주의자라는 등식에 따라 유태인에 대한 증오를 먹고 성장한 세력이다. 공산주의 소련의 강력한 반유태주의는 유명했다. 유럽의 극우민족주의와 극좌공산주의는 반유태적 성향이 강했고, 그나마 자유 민주주의 중도만이 유태인의 권리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세력이었다.
이스라엘-하마스전쟁 유럽에 심각한 영향
20세기 후반부터 아랍계나 이슬람 인구의 유럽 이주가 늘어나면서 정치 방정식은 한 단계 더 복합적으로 변했다. 유럽 사회에서 소수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유태계와 이슬람계가 협력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뜨거워지면 상호 감정적 대립은 심해지곤 했다. 유럽의 극우나 극좌도 대개 전통적 반유태 정서를 새로운 반이슬람 정서로 확산했으나 이들을 둘러싼 정치 게임은 훨씬 복잡해졌다. 유태계와 이슬람계가 대립하는 가운데 한쪽 편을 들어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은 이런 유럽정치의 복합 방정식이 모습을 드러낸 중요한 고비였다. 일단 영국에서는 리시 수낙 총리가 내무장관 수엘라 브레이버만을 경질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경질의 원인은 브레이버만이 매주 진행되는 친 팔레스타인 시위를 '증오의 행진'이라 비판하며 경찰이 좌파 성향 시위대에 너무 관대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의 우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브레이버만은 이민과 이슬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낸 셈이다. 런던에서 친 팔레스타인 시위가 벌어진 주말, 파리에서는 반유태주의를 막아야 한다는 시위가 열렸다.
프랑스 국회 상·하원 의장이 주도한 공화국 시위로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증폭된 반유태주의 분위기를 비판하고 막으려는 거국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거의 모든 정치 세력을 망라한 시위였으나 극좌의 장 뤽 멜랑숑 세력은 불참했다. 표면적으로는 극우의 민족연합(RN)이 시위에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실제 이슬람 세력을 고려한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프랑스의 극우 민족연합은 전통적으로 반유태주의로 유명했다. 하지만 극단적 아버지 르펜에 이어 2011년 당권을 물려받은 딸 마린 르펜은 탈악마화 전략을 통해 집권을 추구해 왔다. 이번 반유태주의 시위 참여는 악마의 탈을 벗고 공화주의의 편에 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반이슬람 정서를 등에 업으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프랑스 사회에서 유태인에 대한 경계보다는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더 강해졌다는 판단이었는지.
이탈리아 이어 프랑스도 극우집권 가시화
1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는 지난 주말 파리 시위에서 극우 민족연합의 시위대는 200여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40여명이 하원의원이었고 시위행렬의 맨 끝에서 참여를 허용했다는 소식이다.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상징적 의미는 크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이제 프랑스의 유태계가 마음 놓고 극우를 지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 극우도 집권을 향해 성큼 다가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