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이 뭐 별 거 없네"
2022년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으로 인한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빌라왕', '건축왕', '빌라의 신' 등 보증금을 반환할 경제적 능력도 없으면서 임차인의 돈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사기를 저지른 사람들의 별칭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한국말이 조금 서투른 중국 동포 아주머니가 인천 미추홀구에 마련된 전세피해상담센터를 방문했다. 전세사기가 많은 미추홀구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이 협력하여 운영한 지원센터였다. 한국 말이 서툴러 어려운 법률용어와 경매절차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지 전재산인 보증금을 찾을 수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겠지요? 한국에 와서 저와 아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습하고 어두운 반지하 방에 살기 싫었고 햇빛이 드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서 모은 돈으로 계약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의뢰인은 저당권이 설정된 집에 입주해 있기 때문에 경매가 끝나면 나가야 했다. 보증금 액수가 많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최우선변제금도 받을 수 없었다. 법적으로 보증금반환청구소송, 사기죄로 고소하는 방법이 있지만 사기범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전세사기로 전재산 날리는 피해자들
전세 피해는 인천뿐 아니라 서울 화곡동에서도 발생했다. 화곡동은 지하철이 지나고 교통이 편리하지만 서울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게 임차할 수 있는 빌라, 다세대 주택이 많은 지역이다. 그리고 집값과 보증금의 차액이 적어 전세사기꾼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냥터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은 협력하여 서울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 중년 부부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세금문제로 잠시만 주민등록을 이전해 주면 된다는 말을 믿고 주소를 이전했을 뿐인데, 그 사이 임대인이 주택을 신탁회사에 담보로 제공한 사연을 말했다. 하지만 단지 주소를 며칠 이전했을 뿐인데 신탁회사에 대항할 수 없는 임대차계약이 되고 말았다. 학교를 다니는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부부가 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필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전세피해 법률지원단장으로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서울 화곡동에 있는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나가 직접 법률상담·법률구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변호사로 상담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는 보증금, 성실하게 일해서 모은 보증금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전달하는 것도 변호사의 역할이다.
"힘들게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법이 뭐 별 거 없네" 중년 부부는 낙담하며 돌아갔다.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그들의 말이 필자의 가슴 속을 후볐다.
전세사기에 대책 없는 무력한 법 현실
서민들을 위해 무료로 법률상담을 하고, 필요할 경우 소송도 대신 해주는 공단에서 근무하는 필자가 한없이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무언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올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