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아세안+3 협력체제, 동아시아 평화·발전에 기여

2023-11-17 10:49:06 게재

한일중 3국 정상회의도 4년만에 개최 기대 … 동아시아 위기발생시 지역협력 제도화해야

정해문 전 태국 대사

오늘날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통합을 선도하고 촉진하는 협의체는 아세안+3 체제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체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두 체제는 동아시아 통합을 견인하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세안+3 체제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유사한 초국가적 위기 방지를 논의하기 위해 아세안이 1997년 12월 말레이시아 개최 아세안 창립 3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 동북아의 한일중 3국을 함께 초청하여 아세안+3 정상회의를 역사상 최초로 개최한데서 유래하며 그 이후 매년 아세안 의장국에서 아세안+3 정상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1998년 12월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차 아세안+3 정상회의는 아세안과 한일중 3국 정상들이 아세안+3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 다른 동아시아 통합의 축인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 체제는 2005년 출범하였으며 아세안, 한일중, 호주, 뉴질랜드, 인도, 미국, 러시아 등 18개국이 회원국으로 참가하고 있다. 아세안+3 정상회의와 마찬가지로 매년 아세안 의장국에서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아세안+3 체제는 경제, 통상, 금융, 식량안보 등 경제 전반과 기능적 협력에 주안점을 두고 운영되어 왔으며 이러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협력의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반면, 동아시아 정상회의 체제는 동아시아의 평화, 안정, 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역내 정상들이 전략적, 정치적, 경제적 현안과 공동의 관심사를 폭넓게 논의하는 정상 주도의 포럼이자 실질 분야 협력을 위한 '지역 협력체'로서 이중적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9월 6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기념촬영 장면. 왼쪽부터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싱가포르 리센룽 총리, 태국 사란 차런수완 사무차관, 베트남 팜민찐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중국 리창 총리, 라오스 손싸이 시판돈 총리, 브루나이 하사날 볼키아 국왕, 캄보디아 훈 마넷 총리, 말레이시아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 동티모르 샤나나 구스마웅 총리. 신화=연합뉴스


◆아세안+3 체제에서 탄생한 한일중 체제 = 한일중 3국 협력체제는 아세안+3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태동하였다. 한일중 정상회의의 효시는 1999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이 따로 3자간 조찬 회동을 한데서 유래한다. 이후 한일중 정상회의는 아세안+3 정상회의와 연계되어 개최되다가 2008년부터는 한일중 3국이 돌아가면서 자국에서 개최하는 독자적 협의체로 발전하며 역사적 한일중 협력의 시대를 이끌어 왔다.

한일중 3국은 아세안+3 협력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고 필요한 경우 3국간 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한일중 정상회의는 매년 2차례(아세안+3 정상회의와 연계하여 1회, 한일중 3국 간 순번에 따라 각국에서 1회씩)로 정례화되었고 한국에 3국협력사무국(TCS)을 개설하는 등 부분적 제도화도 이루어졌다.

반면, 3국 협력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교섭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과거 수차례 중일간 및 한일간 정치·외교적 갈등으로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되지 못하는 파행을 겪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2019년 12월 청두 3국 정상회의 이후 코로나19 확산과 3국간의 양자 관계 경색 등으로 3국 정상회의는 중단되었으며, 올해 3국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의 이니셔티브로 3국은 금년 내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이례적으로 지난달 12일 성명을 발표하고 3국 외교장관회의 및 정상회의 재개 등 3국 협력 메카니즘의 복원 움직임을 환영하며 동아시아의 평화, 안보, 안정 및 번영을 더욱 촉진하기 위한 3국 협력의 재활성화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세안은 3국 협력의 활성화가 아세안+3 협력에 활력을 불어넣고 아세안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 구도를 강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세안은 현재 한일중 3국 협력 체제의 의장국으로서, 아세안+3 협력체제 동북아 조정국으로서, 한국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동남아·동북아는 운명공동체 인식 확산 = 아세안의 공동체 건설 경험은 동북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세안은 회원국 간 양자 분규가 지역협력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철저히 분리 대응한다. 동북아는 이와 정반대다. 한일중 3국은 양자 갈등이 지역협력에 직격탄을 날려도 한동안 방치해 둔다. 아세안은 아세안+3 협력 체제를 이끌면서 한일중이 서로 협력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는데 일조했다고 자평한다.

마티 나탈레가와 전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그의 저서 '아세안은 중요한가?'에서 "한일중이 서로 간의 양자 관계의 민감성을 감안할 때 3국간의 협력을 가능토록 한 아세안의 기여도는 충분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며 "분명 아세안은 3국의 협력에 대해 기존에 없던 별도의 3국 협력 프로세스-정기적 외교장관회의 및 정상회의-를 구축하는데 기여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1997년 가을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에 긴급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미증유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긴박한 순간에도 선각자들은 위기 해법의 일환으로 동남아와 동북아를 엮어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통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앞을 내다보는 예리한 통찰력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동남아와 동북아가 힘과 지혜를 모아 미래 유사한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실제 위기 발생 시 최단 시일 내 해결을 도모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사회적 충격을 최소화 하는 구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역사적인 제1차 아세안+3 정상회의는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길을 열어주었다. 동남아와 동북아가 동아시아의 가족으로 함께 손을 잡고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순간이었다.

◆한일중 핵심 교역파트너로 부상한 아세안 = 아세안+3 협력 체제는 동남아와 동북아의 평화, 안정, 발전 및 번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호혜적 혜택을 누리는 협력 체제로 발전하고 있다. 동북아 3국은 각각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위, 3위 및 10위권이다. 세계 경제와 첨단 기술의 최강자 그룹에 속한다.

한일중 3국과의 협력에 힘입어 최근 아세안 경제는 역동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0년 아세안 경제는 연평균 성장률 3.98%를 기록, 전 세계 연평균 성장률 2.6%를 크게 웃돈다. 인도네시아의 올해 아세안 의장국 수임의 주제는 '아세안의 중요성: 성장의 중심' 이다. 동남아를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엔진으로 가동시키려는 야심찬 목표를 추구한다.

아세안은 이제 한일중 3국의 핵심 교역 파트너 겸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아세안+3 국가들을 주축으로 하는 세계 최대 메가 자유무역협정(RCEP) 이 2022년 발효되어 무역을 통한 추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아세안+3 국가들은 외환위기 예방을 위해 역내 금융 안전망 역할을 하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를 출범시켰으며, 2400억불 규모의 다자간 통화 스와프 체계를 운용 중이다. 2011년 유로존 위기를 계기로 위기예방 기능이 도입되었고 IMF 연계 없이 지원할 수 있는 구제금융 비율도 30%에서 40%로 늘어남에 따라 독자적인 대응 능력이 강화되었다.

한편, CMIM 운용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아세안+3 거시경제 감시기구(AMR O)'설립 움직임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경제 감시능력은 지역 금융안전망의 핵심이기도 하다. AMRO는 2011년 5월 비영리기구로 싱가포르에 설치되고 2016년 2월 국제기구로 전환되었다. 또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식량안보를 위해 '아세안+3 비상 쌀 비축제(APTERR)'를 운용하고 있다. APTERR은 아세안 10개국과 한일중 간 식량부족, 재난 등의 비상사태에 대비해 각 회원국들이 쌀 비축 물량을 사전에 약정·비축하고, 비상 시 판매, 장기차관, 무상지원하는 공공 비축제도다.

◆동아시아공동체 실현위한 6개 핵심권고 =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아세안+3) 지역협력의 지적 역량을 강화하고 지식 교량을 확대하는데 다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 주도로 1999년10월 출범한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의 비전보고서에 담긴 동아시아공동체 실현을 위한 6개 분야 핵심 권고사항-경제, 금융, 정치·안보, 환경·에너지, 사회·문화·교육, 제도-이행을 위한 아이디어와 제안이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세안+3 협력 체제 내에서 속속 현실화 되고 있다.

EAVG 비전 보고서는 무엇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교훈삼아 역내 유사한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고 위기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역협력을 제도화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면서 구체적 정책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인-태 전략 안에서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 번영, 발전을 추구하는 동아시아공동체 비전은 22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여전히 현재와 연동되어 움직이고 있다. 시공을 초월하는 적실성이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