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함정산업 '수출형'이 답이다

2023-12-07 11:07:08 게재
최태복 HD현대중공업 이사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른 해양패권 흥망사에서 '연합국에 최종적인 승리를 안겨준 열쇠는 해군력과 생산성 혁명에 있었다'고 정의했다. 군사 대국 러시아조차 무기를 조달하지 못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고전하고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군사력의 생산성이란 방위산업을 일컫는다. K-방산역량은 이미 한국군의 수요를 충족하고도 남는 수준에 와 있고 이로 인한 '적기납품'은 K-방산의 경쟁력이 됐다. K2 전차, K9 자주포, FA-50이 K-방산의 주력이지만 실상 K-방산 수출은 함정산업에서 시작됐다. 1987년 HD현대중공업이 뉴질랜드 군수지원함을 수출하면서 함정수출의 물꼬가 트였고 지금까지 60여척이 인도됐다. 세계 1위의 조선기술력이 함정의 설계와 건조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7000톤급 이상 이지스구축함을 건조하는 세계에서 세번째 나라가 됐고 1000톤급부터 3000톤급 잠수함까지 수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로 손꼽힌다. 최근 폴란드 잠수함 건조사업에 참여한 회사는 11개사인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함정산업에서 시작된 'K-방산 수출'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함정산업은 플랫폼의 자체설계와 건조능력에 중점을 두고 발전해왔다. 그러나 국내 수요에 맞춰 다양한 함정을 소량으로 건조하다 보니 민간 조선역량에 기대서 운영되는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에 4개 조선소가 함정건조에 참여했고 지금은 5개 조선소로 늘어나 경쟁은 더 치열해졌으나 규모의 경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1물자 1업체로 전문화돼 수출경쟁력을 갖춘 타 방산과 대조적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해군의 현대화와 전력증강 수요로 인해 함정산업이 동반성장해왔다. 그러나 함정이 대형화 고성능화되면서 건조 척수가 줄어들어 함정산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함정건조비의 80%를 탑재무장과 전투체계, 장비가 차지해서 플랫폼을 건조하는 조선소의 수익성은 더 악화됐고 인력난까지 가중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 K-방산은 '정오의 해'를 받고 있는데 함정산업에는 벌써 '그림자'가 들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군사력의 생산성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유사시를 대비해서 최소한 함정 유형별로 복수업체는 유지돼야 한다. 복합무기체계인 함정은 설계부터 건조까지 최소 3년 이상이 걸린다. 그만큼 해군력은 생산성이 중요한 요소다.

함정산업은 살려야 하고 그 길은 수출밖에 없다. 기술력은 이미 검증됐고 탑재하는 무기체계도 대부분 국산화됐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대표적인 수출산업이라 노하우도 충분하다. 국내 함정산업을 수출을 위한 생산기지로 바꾸면 된다. 국내 함정기업 간에 무한경쟁하는 구조에서 함정별로 전문화·계열화를 통해 예측가능한 경영을 보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함정산업 살릴 길은 수출뿐

일본은 함정건조 물량을 복수업체에 일정하게 분배함으로써 함정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을 보장해왔다. 이렇게 안정된 기반을 갖추고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에 나선다고 한다. 상대는 정부 주도로 기업마저 원팀으로 나서는데 우리는 집안에서 경쟁하느라 정작 밖에서는 힘을 못쓰고 있지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함정산업을 수출형 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