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우크라이나 장래와 한러관계
우크라이나는 올해 대공세에서 영토회복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실패 이유에 대해 "서방의 과도한 기대 속에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작전 기획에서 큰 이견과 오판으로 러시아군이 겹겹이 친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있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크렘린이나 키이우 당국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휴전이나 종전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대로 방치되면 전선은 러시아 전력의 우세와 서방의 지원 부족 하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은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압도하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서방이 이러한 흐름을 막아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3년째인 내년 국방비를 1100억달러나 배정하며 무기생산을 위해 방산공장을 전면 가동하고 훈련된 군대도 늘려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유럽은 내년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적 변화나 혼선 상태에 빠져있다. 특히 미 상하원의 공화당 다수의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승인에 앞서 민주당에 유리한 이민자 사면정책을 수정하도록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올해 말까지 백악관이 내놓은 610억달러의 키이우 지원안에 타협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내년에 대선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트럼프처럼 러시아와 타협하겠다는 후보가 11월 당선될 경우 지원과 전선의 판도를 바꿀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
한국에 손 내민 푸틴과 지정학적 현실
유럽국가들은 그동안 비축된 무기를 키이우에 지원했지만 지속해서 무기를 공급하거나 자체적으로 보충할 방산기업을 가동할 투자를 지연시키고 있다. 유럽연합(EU)의 540억달러에 달하는 키이우 지원 결정 과정이 헝가리 등의 반대로 순탄치 않을 뿐더러 6월 유럽의회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외국 지원에 의존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동원 병력도 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전투에 투입되는 문제가 있다. 여러 한계를 고려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1월 말 겨울철 대비 방어선을 신속히 구축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내년에 우크라이나가 전선을 지키면서 전쟁 종식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기를 바란다면 지난 선진국정상회의(G7) 때 약속한 서방의 장기적 지원과 안보보장 방식이 실천돼야 한다. 11월 말 나토-우크라이나 간 외교장관회의 결과를 보면 나토측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국 수호를 위한 지원을 확대할 것임을 재확인했지만 내년도 군사지원 발표는 현재 독일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회복하려면 서방은 전폭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겠지만 여러 현실적 제약에 부딪혀 있다. 14~15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EU 조기 가입을 위한 협상 개시를 인정할 지 여부는 키이우 장래를 위해 유럽이 단합된 입장을 취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4일 20개국 대사들과 함께 우리 신임대사의 신임장을 받는 자리에서 "안타깝게도 한러관계가 최상이 아닌 시기를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와 한국의 협력관계 회복은 한국에 달려 있다"며 "러시아는 이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 푸틴은 또 "몇년 전만해도 양국관계는 건설적으로, 특히 경제 분야에서 호혜적으로 발전돼 왔으며 한반도 상황의 정치적 외교적 해결을 위해 함께 일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통해 최근 어려워진 한러관계를 건설적으로 반전시키고자 하는 의향을 공개적으로 발신한 것이다.
대러시아 관계 재고해야 할 시기 다가와
우크라이나의 안보와 평화회복에 대해 우리는 원칙과 기준에 따라 측면 지원을 한다고 공언해왔다. 그런 만큼 앞으로 유럽이 더 큰 역할과 책임감을 발휘해 나가야 한다. 대신 우리는 동북아의 안정과 한반도 리스크 해소를 위해 관련국들과 상호이해와 협력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새해 정세가 도처에서 불안정성과 분쟁 발생 위험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관련국들이 적극 나서서 이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반도 안정과 관련해 러시아가 한러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포탄 문제나 북러 간 군사거래와 같은 부정적인 이슈에서 벗어나 건설적 역할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면,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 안보의 지정학적 현실을 직시해 러시아와 관계를 생각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