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식과 진실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로 기억되는데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3년이다. 어머니 지인 한분이 미국에 사는 아들 집에 다녀오셨다는 사람의 말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분 말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은 한마디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잘 사는 것 같았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데, 의자에 앉아서 일을 본다더라,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다더라, 얼마나 편리한지 수도꼭지만 틀면 콜라가 나온다더라."
다른 이야기는 별 불편한 기색 없이 들으시던 우리 어머니는 "수도꼭지에서 콜라가 나온다"는 말은 용납할 수 없었던지 한마디 하셨다. "상식적인 말을 해라!" 그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셨다. 일곱 남매를 무탈하게 잘 길러주시고 효부상도 받으신 자랑스럽고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의 상황판단 능력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던 필자였지만, 그 아주머니의 "수도꼭지를 틀면 콜라가 나온다"는 말씀이 옳았다는 건 서울 올림픽 전인가 후인가 친구들과 처음으로 맥도날드에 가고서야 알게 되었다.
16세기 사람이었던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다가 재판까지 받게 됐다. 그 당시 천동설은 진리였고 누구도 반박해서는 안되는 권위마저 갖고 있었다.
탄소중립의 전제는 대한민국의 생존
필자는 '상식은 변할 수 있고 심지어 과학적 정의도 변할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상식이지만 전제가 변하지 않으면 거의 진리인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결론을 내는 상식도 있다'고 믿는다. 상식이 상식이 될 수 있으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수도꼭지에서 콜라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상식이 되려면 그 수도꼭지가 콜라를 계속 공급해 줄 통이나 파이프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가 섬(Island)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어라 할까? 전력이 되었든 가스가 되었든 우리나라는 바다를 거치거나 비무장지대를 거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드나들 수 없는 그런 땅이다. 철조망 너머 땅이야 너무 오랫동안 남남으로 지내는 형제이니 크게 달라질 것 없다고 치더라도, 거친 파도가 부는 험한 바다를 어떻게 건너다녀야 할지 고민하는 나라이니 섬이라는 말이 상식이 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동참하고 있는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반드시 개발하고 활용해야만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만 깨끗하고 좋은 에너지라는 것이 상식"이라고 주장한다면 "콜라는 절대로 수도꼭지에서 나올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우리가 추구하는 탄소중립은 지구를 온전하게 보전해 인류공영의 꿈을 이루려는 대의에 기반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성장이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특정 기술만 지고지선이라는 건 억지
그러므로 한국의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쓰일 에너지는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품질도 좋은 채로, 과히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공급해 줄 수 있도록 할 기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기술이 있다면 마땅히 써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어떤 기술만 지고지선이라 하는 건 16세기 종교인들이 천동설로 과학자들을 억압하고 재판했던 것과 닮아 보여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