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어촌 도로, 노인안전 '마을주민보호구간'으로
도시 구간을 벗어나 도로를 달리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차로 위에 올라선 전동휠체어도 그렇지만 마을 입구와 학교 앞 도로를 빠르게 지나치는 차들 때문이다. 이런데도 주행하는 차량의 속도를 낮출 물리적 장치가 없고 보행자를 위한 보도마저 찾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시행되면서 도시지역에서는 차량의 제한속도가 50km/h 이하로 관리되고 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9조가 그 법적 근거이지만 도시지역 도로에 한정된 조치로 비도시지역은 해당되지 않는다. 농어촌지역 주민이 소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고령인구 비율은 17.7%다.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인구 비율이 16%, 농어촌과 같은 비도시지역은 25%로 격차가 심각하다. 전북 비도시지역의 경우 고령인구 비율이 35.5%나 된다.
이런 고령인구의 교통사고 비율도 높다. 우리 통계를 보면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의 35.5%에 이른다. 특히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5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교통사고 사망자와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률 모두 높은 상황이니 불편한 마음이다.
마을주민보호구간으로 사망자수 급감
이런 상황에서 '보행자 교통사고' '고령 보행자' '비도시지역' 이라는 키워드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보면 어떨까? 도로가 이동의 동선 기능을 가졌더라도 마을주민이 주로 활동하는 범위에 들어있다면 그때만큼은 주거지 생활도로인 셈이다. 모든 자동차가 이 구간에 들어서면 속도를 낮추고 보행자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농어촌 마을주민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의 일정 구간을 '마을주민보호구간'으로 지정하면 된다. 마을 구간을 통과하는 동안 차량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보행 공간을 확보하고 가꾸는 등 안전한 보행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마을주민보호구간 제도는 국토교통부가 일반국도를 대상으로 이미 시행중이다. 사업시행 구간에서는 교통사고 건수가 약 31%, 사망자수는 무려 64% 감소했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자체 모든 도로까지 이를 확대하려 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특별교부세를 활용해 시범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도시와 농어촌을 구분하지 않고, 생활 권역에 상관없이 국민 누구나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행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를 인정한다면 마을주민보호구간 제도는 규제의 강화가 아니라 보행자 권리의 확장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맞다.
농어촌 마을의 핵심 인구는 노인들이다. 전체 노인의 약 60% 정도의 이동은 보행으로 이루어진다. 마을주민보호구간 제도는 도로교통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측면도 있지만 적어도 지방에서는 부실한 노인보호구역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확장성이 좋은 제도다.
비도시지역 교통약자 위한 정책 필요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비도시지역의 고령화 수준은 더욱 높다.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노인은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품고 가야 할 교통약자다. 하지만 인구소멸이 진행되는 지자체 비도시지역의 경우 열악한 재정 여건으로 인해 정책의 실현이 쉽지 않다. 국가의 안정적인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