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체결 20년, 농업의 현실과 미래 ④ | 4. FTA 교실 참여 교사 간담회

데이터로 공부해본 FTA, 농업도 유망직업으로 전환 계기

2023-12-26 12:25:32 게재

6개월간 18개 고교에서 540명 수업, 공공 데이터 활용해 FTA 주제 탐구 … '농업의 재발견'에 진로 변경 학생 늘어

제작지원 : 2023년 FTA 교육홍보사업

올해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20년이 되는 해다. 2003년 2월 한국은 칠레와 처음으로 FTA를 체결한 후 그동안 세계 59개국과 21건의 FTA를 맺었다. 농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해 다양한 보호조치가 취해졌고, 20년동안 국내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피해를 기회로 뒤엎은 품목들도 탄생했다.

내일신문은 올해 전국 고교 18곳과 FTA 체결에 따른 농업의 변화에 대한 농경제·농생명교육 프로그램인 'FTA 학교로 가다 2.0'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조별 과제를 통해 다양한 연구조사 결과를 내놨다. 수업을 진행한 교사와 좌담회, 학교별 우수과제 선정 결과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학생들이 FTA 교육 프로그램 참여 후 농업의 다양한 분야와 가치에 눈을 떴다. 선택 과목을 바꾸거나 농식품경제학과로 지망 학과를 변경한 사례가 있는 것을 보면 이번 교육으로 농업에 대한 고교생들의 이해도가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태화 경기 퇴계원고 교사가 'FTA, 학교로 가다 2.0' 교육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의 변화를 눈여겨 본 소감을 말했다.

내일신문은 7월부터 12월까지 전국 18개 고교에서 진행한 실습형 프로그램 'FTA, 학교로 가다 2.0'을 마무리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과정에는 540명의 고교생이 참여했고 담당교사와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교육을 진행했다.

참여 학생들은 2~3일에 걸쳐 'FTA 데이터를 활용한 통계 및 계량경제학 기초 실습' 후 조별 탐구 주제를 선정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1차 학교별 심사와 2차 서류평가를 거쳐 26일 3차 발표대회에서 최종 수상팀을 결정할 예정이다. 막바지 심사를 앞두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사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내일신문 광화문 사옥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개최했다.

사회(표희수 내일신문 본부장): FTA 교육홍보사업이 고교에 수업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대개 직접 당사자인 농민 대상으로 진행됐다보니, 사업 취지에 맞는가 하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의 농업과 FTA에 대한 관심을 끌어냈다는 인상이다.

신재철 경기 경민고 교사. 사진 이의종

신재철(경기 경민고 교사): 2년 연속 참가했다. 지난해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주제로 한 탐구 보고서로 입상한 학생 중 농경제, 농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 진로를 변경한 학생이 나타났고, 올해 관련 주제를 보다 심화해 탐구한 사례도 확인했다. 글로벌비즈니스 분야에 관심 있던 여학생은 농경제 중심의 국제 시장에 관심이 높아져 지망 전공을 농경제학과로 변경했다. 낙후 분야로 생각한 농업 진로의 가치를 재발견한 셈이다. 진로 수업에서도 4차 산업혁명 등 첨단 산업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업종의 등락이 심한 반면 농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불변하기에 기회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교사 조언을 체감하며 시야를 넓히는 효과가 크다. 교사 입장에선 고교 수업 모델 바꿀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태화 경기 퇴계원고 교사. 사진 이의종

이태화(경기 퇴계원고 교사): 올해 처음 참여했다. 농어촌에 위치한 학교라 FTA 분야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컸다. 인문 계열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도 많아 학생들의 신청이 쇄도했다. 데이터 관련 역량을 확인하는 별도 과정을 거쳐 참여자를 확정했다.

특히 대학교수 수업, 엑셀 활용이 인기를 끌었다.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찾고, 엑셀로 다뤄보는 방법을 알게 돼서 타 교과 수업이나 주제 탐구 활동에도 활용해볼 수 있겠단 반응도 있었다.

윤윤구 서울 한양대사대부고 교사. 사진 이의종

윤윤구(서울 한양대사대부고 교사) : FTA는 일반 학생들에겐 낯설다.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점에 끌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자신들의 진로와 농업을 엮어보면서 관심 분야를 확장하고 심화하게 된 사례가 많다. 고민하면서 농업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고, 학습·진로 탐색 동기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프로그램 종료 후 외부 특강에 FTA나 농업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잇따랐다. 입시 면에서도 도움이 됐다. 지난해 참가자들이 올해 관련 분야의 심화 탐구를 이어가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권 대학 약학과 합격 사례가 나왔다. 면접에서 관심과 질문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런 사례들이 누적되면 프로그램, 농업·농경제에 대한 교내 학생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김정환 대구 혜화여고 교사. 사진 이의종

김정환(대구 혜화여고 교사) : 사전엔 대학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듣는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호응이 컸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벼 심기' 등 노동집약적 1차 산업 정도로 인식했던 농업 분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농업의 다양한 영역을 찾아보며, 진로를 확장하는 계기가 된 것도 수확이다. 또 교과서로는 최신 사회 이슈를 다루기 어려운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실생활 이슈를 접하고 관심 주제를 발굴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유의미했다.

사회: 실제 교과서에는 FTA를 비롯해 RE100, ESG 등 탄소 중립이나 기후 위기 관련 내용도 없다. 전 세계적인 이슈이고, 생활과 밀접한 주제인데 교과서로만 수업하면 다룰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초중등과 달리 고등학생 대상의 교육·체험 콘텐츠도 찾기 어렵다. 좋은 수업을 위한 내용과 형식, 두 가지 모두 부족한 게 우리 고등학교의 현실인 것 같은데.

이태화: 수업의 형식도 대단히 중요하다.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며, 평가가 없었기에 학생들이 참여와 만족도가 높았다. 등급을 산출하고, 진도를 나가야하는 일반 수업에서 같은 내용으로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윤윤구: 경제과목은 사회탐구 과목 중에서 상대적으로 난도가 높다. 그렇다보니 학교 수업과 수능에서 선택자가 극소수다. 모수가 적고, 등급을 받기 어렵고, 이 때문에 다시 선택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고착됐다. 이런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경제, 농업에 대한 흥미를 부여하고, 단위 학교 간 교류를 확산하기도 좋다. FTA, 데이터, 통계 등 어려운 소재를 전문가·교사와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크게 성장한다. 이런 경험을 한 교사들은 이후 수업 내용에 반영한다. 내 경우 이번 프로그램 참여 후 정규 수업인 경제수업에서 교과 내용을 재구성 해 FTA 내용을 늘렸다. 현실 속 문제로 경제교과는 물론 정부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농업분야 관심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육종 전문가를 희망하는 학생에게 영화 마션과 미국의 바이오 스피어스 프로젝트를 알려줬고, 학생은 이를 바탕으로 우주 농업 관련 학습·탐구 활동을 이어가며 '테라포밍 육종'까지 스스로 찾아갔다. 이런 측면에서 우수 탐구보고서 발표 대회를 캠프 형태로 진행하면 좋겠다. 서로의 사례를 공유하고, 의견을 직접 교류하면 교사·학생 모두 더 도움될 것 같다.

신재철: 교내 경제교사에게 확인해보니 FTA는 일부 경제 교과서 후반부 자유 무역 부분에서 탐구 문제 소재로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FTA, 농업·농경제를 접하기 힘든 현실이다. 관련 부처에서 실생활과 관련 깊은 첨단 유망 산업으로 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싶다면 사회적 여론 환기나 정책적 접근도 필요하고 학교에서 교과와 연결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 확대를 검토해주길 바란다.

사회: 이 프로그램 특징은 FTA에 대해 '통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요즘 학생들은 FTA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고, 들여다보면 비교우위 등 수학적 개념과 사회 문화 경제 법 등 여러 지식이 필요해 까다롭다. 관련 데이터를 찾아 분석해야 하는데 고등학생 수준에서 활용할 만한 데이터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이태화: 엑셀 기본 기능을 익히고 주제를 찾아 탐구하기까지, 시간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요즘 학생들은 엑셀 활용에 서투른 이가 많다. 교수 강의 영상을 별도로 공유하고, 주제 선정 및 탐구 시간에 좀 더 여유를 주면 좋겠다. 2학기 정기고사·학기말 기간과 겹치지 않게, 프로그램 운영 시기를 연초 겨울방학 시기로 변경하는 것도 검토해 달라. 또 관심 주제를 찾았는데, 전후를 비교할 데이터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 아쉬웠다.

김정환: 공공 데이터가 있지만 매우 방대하다. 특히 농업은 품종이 다양하고 기후 등 변수가 많다. 의미 있게 활용하려면 정제 과정이 필요한데, 학생들 수준에선 어렵다. 사전에 교수나 전문가가 의미 있는 시점을 짚어주거나 주제별로 가이드를 준다면 학생들의 탐구 주제 선정이나 데이터 활용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신재철: 농업이나 FTA에 대한 별도 자료를 제작·배포하길 건의한다. 진로교사 입장에서 학생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경제 사회과학 생명과학 기계공학 등 익숙한 분야에서 농업과 관련한 가치 있는 분야를 발견하며 성장하길 원한다. 현실적으로 농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고, 진로 지식도 얕다. ICT 기술과 만나 현대화·첨단화된 농업 시장과 직업에 대한 안내 자료가 있다면 학생들이 보다 넓은 시야로 주제를 탐색, 탐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프로그램이 계속되길 바란다. 2회차 참가하며 경험도 쌓이고 기존 참가자들이 신규 참가자를 이끌고 교내 학습 문화부터 진로 교육·진학 지도까지 이어지고 참여 희망자도 늘고 있다.

김양일 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 사진 이의종

김양일(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 : 최근 농산업 분야는 푸드테크, 스마트팜, 그린바이오 등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농수산대 졸업자들은 대기업 회사원 이상의 고연봉을 받는 이들이 많고 기계공학 등 비 농업전공자들이 스마트팜을 창업·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학생들이 참고하면 좋겠다. 과학 공학 무역 법 등 다양한 분야가 섞여 있기에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융합할 여지도 많다.

현재 FTA 교육 홍보 사업 중 홍보의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 주로 다큐멘터리 방송이나 신문 기사를 통해 일반의 인식 제고를 도모하는 편이다. 이번 사업은 고교생을 대상으로 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학교 교육을 통해 농업과 MZ세대를 직접 연결한 점도 인상 깊다. 미래 청년농을 유입하고, 첨단 ICT 역량과 접목해 농가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 같다. 우리 농식품 수출 확대나 신품종 개발, K-푸드 시장을 통해 농업 분야는 더 성장할 것으로 본다. 우수 탐구보고서대회에 학생들이 선보일 내용이 기대된다.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

["FTA 체결 20년, 농업의 현실과 미래"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