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용균을 잊지 못하는 이유
2018년 12월 27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다. 고용노동부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산안법을 개정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업의 반발 등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김씨 사망으로 급물살을 탔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로 근무하던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 10일 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고 다음날 새벽 경비원에 의해 발견되면서 열악한 작업환경이 알려졌다.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씨가 아들과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산안법이 전부 개정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김용균 사망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전부개정된 산안법은 유해위험성이 높은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고 알려졌지만 개정된 법에는 김씨가 일하던 발전소 업무는 도급금지작업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 됐다.
최근 김씨 사망사건의 최종판결이 대법원에서 내려졌는데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인정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의 사망에 대해 원청업체 사업주가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김용균 사망 판결은 중대재해법의 효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안타까운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산안법이 전부개정되고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음에도 사망사고는 크게 줄지 않았다.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해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자기규율예방체계를 통한 위험성평가를 핵심전략으로 채택하면서 산재예방활동을 기업의 자율에 맡겨 사고사망은 크게 감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시행을 유예하려는 움직임 등 산재예방정책을 후퇴시키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 3년 유예됐던 중대재해법 적용을 한달 앞두고 유예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법을 지키려는 의지보다 회피하고자 하는 인식이 더욱 높음을 시사한다. 중요한 것은 사업주의 인식변화다. 사업주가 중대재해를 예방하겠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는 이상 법 적용을 유예해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중소규모 사업장에 필요한 실질적 지원
중소기업 대표들은 안전보건을 위한 인력 자원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그동안 안전보건공단에서 시행한 50인 미만 사업장의 지원예산을 보면 안전보건체계 구축 및 기술지원사업으로 2023년에 832억원을 사용했다. 내년에는 1133억원을 배정한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노력과 기업의 인식 간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적이나 성과위주의 한시적인 사업은 예산만 소진할 뿐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없다. 소규모 사업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안전보건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하고 공동채용안전보건관리자 제도를 활용해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안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소한의 요건이며 타협이나 협상으로 양보할 수 없는 생명존중의 실천이다. 무조건 뒤로 미루기보다 이 기회에 제대로 안전보건관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김용균씨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