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불확실성의 새해, 가장 큰 리스크는 미국 대선
2024년 새해가 성큼 다가왔다. 경외의 대상인 용(龍)의 해답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국내외 정세는 팬데믹 여파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동유럽과 중동의 연이은 전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격화하는 강대국간 경쟁 사이에 놓인 지정학 단층대가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흔들리는 국제질서 속에서 유동성을 키울 불확실성 변수들도 도처에 꽈리를 틀고 있다.
새해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선거의 해가 될 것이다. 50여개국에서 중요한 선거가 예정돼 있어 '수퍼 선거의 해'라고까지 불린다.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연초 대만 총통선거를 시발로 봄에 우리 총선, 러시아 대선에 이어 가을에 미국 대선으로 숨가쁘게 이어진다. 모두 해당국의 장래는 물론 우리를 포함한 주변국과 세계에 심대한 정치적 파장을 주게 될 선거들이다.
러시아를 빼면 선거 결과를 점치기 힘든 박빙의 승부인데 반해 그 결과는 거의 정반대의 파장이 예상된다. 사회와 정치가 양극화하면서 선거가 정치적 안정이 아닌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키우는 대의제도의 모순이 갈수록 부각된다.
미 대선 시나리오별 대응전략 준비해야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큰 불확실성의 원천은 미국 대선이다. 우선 같은 후보간에 4년만의 리턴매치가 유력한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다. 이번에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미 경제에 대한 실망감과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과 건강에 대한 우려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금씩 앞서 간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법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지지층에 힘입어 공화당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세력 중에는 트럼프의 사법리스크와 인기 영합주의(포퓰리즘) 성향에 대한 반감으로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와 같은 대안을 모색하는 기류도 만만치 않지만 공화당 후보 경선 결과를 뒤집기는 아직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두 후보 각기 사법·고령리스크를 가지고 있어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선거의 가능한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매 시나리오 별 대응전략을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이론적으로 네가지다. 공화당에서 트럼프 또는 다른 인사, 민주당에서 바이든 또는 다른 인사가 후보로 뽑힐 경우다. 이중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트럼프와 바이든의 재대결이다. 트럼프의 사법리스크 등으로 다른 후보가 공화당에서 부상할 경우 민주당에서도 바이든보다 젊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찾아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수도 있다. 바이든의 문제는 트럼프가 아닌 다른 공화당 후보가 나설 경우 더 큰 지지율 격차를 보이는 여론조사 추세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출마는 연동되면서 전형적인 '앙숙의 동거' 현상을 보인다.
우리가 면밀히 대비해야 할 리스크는 다음 두가지다. 첫째는 누가 당선되느냐에 상관없이 나타날 미국 시스템의 거버넌스 위기다. 절반의 지지가 승자독식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분열이 더 커질 것이다. 대외정책에 대한 전통적인 초당파주의가 무너지면서 대외개입을 줄이고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 온 미국의 고립주의 경향은 정치적 단층대에서 힘의 공백을 유발해 현상변경 의도를 가진 행위자들에게 기회의 창이 열렸다는 잘못된 신호로 읽힐 개연성이 높다.
둘째는 트럼프의 재집권이 확정될 경우에 올 리스크다. 트럼프는 1기 재임시 얻은 나름의 학습효과로 2기 진용을 충성맹종파로 채울 것이다. 아울러 바이든이 돌려세웠던 트럼프의 반국제협력 조치들을 원위치시키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할 것이다. 기후협약 군축조약 WHO 등이 일차적으로 희생양이 되고 대외개입과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약화시킬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우리 어깨 너머 북한과의 깜짝 빅딜 추진, 세계적으로는 임계점을 넘어 선 기후변화 부정론과 기로에 서 있는 군축조약의 파기로 핵겨울의 망령까지 소환해서 인류의 생존적 위기를 심화시킬 위험도 있다.
중장기 고립주의 회귀경향 대비할 필요
우리의 시나리오 별 대비책은 트럼프 2기만이 아닌 미국의 중장기적 고립주의 회귀 경향을 내다보는 것이 되어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병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미국병의 원인인 양극화 심화를 이용하려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또 다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