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마약사범, 올해도 사상최대치 경신

2023-12-29 10:56:19 게재

10월말 현재 전년 수준, 동아시아 출신 주도

검거하면 두명 중 한명은 '불법체류자' 신분

단순 투약자서 대규모 밀수조직으로 진화도

해마다 증가하는 국내 외국인 마약사범 숫자가 올해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가파른 증가세는 동아시아 출신 노동자, 특히 불법체류자들이 견인하고 있어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올들어 10월까지 적발된 외국인 마약사범이 2562명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태국인 마약 유통조직과 투약자로부터 압수한 합성마약 야바와 투약기구. 사진 전남경찰청 제공


지난해 외국인 마약사범은 2573명이었다. 이는 2021년(2339명)보다 200여명 증가한 것으로 5년 전인 2018년(938명)에 비해선 3배나 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투약·밀수·밀매 등으로 국내 교정기관에 수감되는 외국인 마약사범도 증가세다.

'2023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밀수·밀매·투약 등 혐의로 수감된 외국인은 52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는 613명으로 12배가량 급증했다. 전체 외국인 수감자(1657명) 중 37%가 마약 혐의로 구치소·교도소 등에서 수감됐다.

외국인 마약사범 증가는 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태국인 마약사범은 991명으로 2018년(302명)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10월까지 1016명을 기록해 지난해 집계를 넘어섰다. 중국(588명), 베트남(513명) 출신이 뒤를 이었다. 이들 세 나라 출신 마약사범의 수는 전체 외국인 마약사범(2562명)의 82.6%에 달한다.

관세청이 밀수 적발 과정에서 압수한 마약류 중에서 동아시아 출신 노동자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합성대마와 야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향 마약 밀반입해 투약 = 외국인 마약 범죄 증가세는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늘면서 함께 증가한 불법 체류자가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중심으로 본국에서 마약류를 밀반입한 뒤 자국인들에게 판매하거나 함께 투약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우택 의원(국민의힘)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 마약사범은 2018년 172명, 2019년 353명, 2020년 697명, 2021년 811명, 지난해 945명으로 4년 사이 449.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외국인 마약사범은 2018년 596명에서 지난해 1757명으로 194.8% 늘었다. 불법체류 외국인 마약사범의 증가세가 배 이상 가팔랐다.

외국인 마약사범 가운데 불법체류자 비중은 2018년 28.9%, 2019년 32.3%, 2020년 47.5%, 2021년 48.5%에서 지난해 53.8%로 절반을 넘었다. 실제로 목포해양경찰서는 지난 17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한 베트남 국적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검거된 외국인 마약 판매책 B씨에게 엑스터시 200정 등 마약류를 공급하고, 일부를 자신이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목포해경은 A씨가 전남 서부권에 거점을 둔 외국인 마약 공급책이라는 첩보를 입수, 지난해 6월부터 그를 쫓아왔다. 해경의 추적을 눈치 챈 A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위장해 광주, 대구, 경기 등지의 건설 현장을 떠돌았다. 체포 당시 A씨는 이른바 '클럽 마약'으로 불리는 향정신성의약품 케타민 2.17g(약 720만원 상당)을 소지하고 있었다. A씨가 공급한 마약은 전남 서부권 일대 해상 양식장, 유흥업소 등지에 유통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광주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7일 마약류 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베트남 국적 외국인 등 1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광주 광산구 한 외국인 전용 노래방에서 케타민 마약을 흡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노래방 접객원이 마약을 투약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노래방에 진입해 생일파티를 위해 모여 마약을 함께 투약한 베트남인 10명을 체포했다. 단속 당시 노래방 내부에는 39명의 외국인이 있었는데, 이들 중 30명은 불법 체류자로 확인되기도 했다.

◆합성마약 '야바' 빠르게 확산 = 외국인 마약사범들은 대규모 밀수 조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밀수 사범은 1392명으로 2018년 521명에서 약 167% 급증했다. 전체 마약류 사범 중 외국인 비중은 14%에 불과하지만 밀수 사범 중에서는 절반가량인 약 40%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특히 '야바' 밀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태국어로 '미친 약' 이란 뜻을 가진 야바는 필로폰 성분(30%)과 카페인 성분(60%)을 혼합한 합성마약이다. 열을 가해 발생한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투약하면 공격성이 커지고 정신 장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일 동안 잠을 안 잘 정도로 각성효과와 환각성·중독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알약 형태인 야바는 1정당 3만~5만원 정도로 국내에서 거래되고 있다. 일반 필로폰보다 가격이 10배가량 저렴한 수준이라 외국인 노동자, 특히 태국출신 노동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야바의 태국 현지 가격은 1정당 1000원 단위라 한국으로 들여와 판매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일자리잡기가 어렵고 고향에 송금할 돈이 급한 불법체류자들에게 50배가 넘는 마진이 가능한 야바 유통은 검거와 추방의 위험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매력적인 돈벌이 수단으로 등장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야바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거래되는 필로폰 1g당 가격도 평균 450달러로 미국(44달러), 태국(13달러) 등에 비해 고가다.

실제로 경북경찰청은 최근 야구공 속에 마약을 숨겨 국내로 밀반입시킨 외국인 노동자 B씨 등 16명을 구속 송치하고, 31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태국 출신인 이들은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태국에서 국제우편을 통해 야구공 속에 야바를 국내로 보내 유통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는다. 이들이 밀반입한 마약은 8만2000정으로 시가 상당 41억원이다. 이 중 6만7000정은 압수해 국내 유통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들은 경북, 경기, 대구, 울산 등 외국인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공장 근로자들로 각 지역 중간 판매책들을 거쳐 태국인들에게 야바를 유통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마약을 투약한 태국인들은 주로 불법체류자들로 농촌이나 공단 일대에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집단으로 투약했으며, 출근 직전이나 근무 중에도 상습 투약해 환각 상태에서 일을 했다.

과거 화장품이나 의약품, 식품 등에 마약을 밀반입하던 수법을 벗어나 야구공 실밥을 일일이 뜯어 해체한 뒤 플라스틱 공 안에 마약을 숨겨 재포장하는 교묘하고 치밀한 수법을 사용했다.

◆한국서 동남아로 역수출 조직도 적발 = 한발 더 나아가 서울에 거점을 두고 동남아시아에 마약을 유통하고 판매한 새로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해외에 거점을 둔 마약조직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밀반입한 마약을 점조직을 통해 국내에 유통하는 기존 마약범죄 양상과 다른 모습이라 경찰 관계자들도 놀라고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최근 싱가포르 국적의 국제 마약 판매조직 총책 B씨 등 4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한국에 거점을 두고 자국 내 조직원들과 공모해 신종 대마와 필로폰 등을 해외에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국내 거점 해외 마약 판매 외국인 조직을 적발한 첫 사례다.

B씨 등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에서 마약을 유통하다 싱가포르 수사기관의 추적이 시작되자 이를 피해 강남과 이태원에 잠입해 합숙 생활을 했다. 이들은 텔레그램 채팅방을 운영하면서 젤리, 캔디, 전자담배 등으로 개량한 마약을 싱가포르 등에 판매했다. 또 국내 마약 유통 조직과도 연계하려다 언어 소통이 잘 되지 않자 한국계 싱가포르인을 영입하기도 했다.

경찰은 국가정보원·싱가포르 중앙마약청과 공조 수사를 벌여 처음으로 텔레그램을 활용한 국내 거점 해외 마약 판매 외국인 조직을 적발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소셜미디어(SNS)를 이용해 전 세계 어디에든 거점을 마련하는 등 마약류 유

통 방식이 초국가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불법체류자 감축 대책 필요 = 전문가들은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단순 투약뿐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유통과 판매에도 지속적으로 나서고 있어 지역주민에게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우려한다. 또 외국인 관련 마약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3급지(군지역) 경찰서들은 수사 인력과 전문성 부족으로 상대적으로 허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도권의 한 경찰관은 "특정지역 출신은 고향에서 들여온 마약류를 상비약과 같은 개념으로 대하는 등 죄의식이 없다"면서 "최근에는 고국 마약류보다는 케타민 엑스터시 등에도 손을 대는 등 한국화 경향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조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취업 비자를 발급해 국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마약 범죄 등에 빠지는 불법 체류자를 줄이는 등 외국인 노동자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영해양경찰서 특별마약수사TF반 김수홍 경위는 "외국인들은 텔레그램과 자국민들끼리만 대화할 수 있는 SNS를 사용해 은밀히 거래한다"면서 "첩보수집 단계서부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체류자의 경우 인적사항은 물론 범죄경력 조회나 전과 확인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장세풍 오승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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