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침공 영향과 전망

통합형 수능 3년, 상위권 정시 판도 바꿨다

2024-01-03 10:46:28 게재

수학·탐구 표준점수 자연계열에 유리 …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합격자 중 70% 차지

2022학년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도입된 이후 정시 모집에선 교차지원이 매년 이슈다. 3년차인 2024학년 대입에서는 어떨까? 수능 결과 인문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확률과 통계'와 자연계열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의 표준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더구나 전년과 달리 사회탐구의 난도가 평이해 사회탐구보다 과학탐구의 변환 표준점수에 우위를 준 대학들이 많아졌다. 2024 정시에서도 자신의 점수로 좀 더 높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교차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학들이 복수전공이나 다전공 제도 등 학사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도 교차지원을 염두에 둔 수험생에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통합형 수능 3년 차인 2024학년, 교차지원 양상과 교차지원이 가져온 영향 등을 살펴봤다.


현재 고교는 계열 구분이 없다. 수학과 탐구에서 계열별 선택 과목의 차이는 존재한다. 통합형 수능 3년 차에 들어서면서 일반적으로 과학탐구를 선택한 수험생을 자연계열로 분류한다.

자연계열의 '문과 침공'으로 표현되는 교차지원은 2022학년 수능부터 확대됐다. 2022학년부터 수학 영역을 가형과 나형으로 나누지 않고 공통으로 성적을 산출했다. 그 결과 자연계열 수험생이 인문계열 모집 단위에 지원해 합격선이 더 높은 대학에 입학할 여지가 생겼다. 특히 대학은 자연계열 모집 단위 지원 시 수능 수학과 탐구 영역의 특정 선택 과목에 응시할 것을 지정했다. 반면 인문계열은 별다른 조건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인문 성향 수험생은 자연계열 모집 단위에 지원할 수 없지만 인문계열은 선택과목의 제한이 없어 자연계열 수험생의 교차지원 양상을 키웠다. 다수의 입시 전문기관과 일부 대학 입학처에 따르면 2022학년 정시에서 상위권 대학의 인문계열 합격자 중 70%, 특히 수학 역량이 중요한 상경계열은 합격생 대부분이 교차지원한 자연계열 수험생이었다.

사실 통합형 수능 시행으로 교차지원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다만 현재처럼 대입 판도를 뒤집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치는 못했다. 교차지원은 상경계열뿐 아니라 인문계열 전 모집 단위로 확대됐다. 특히 수학을 많이 활용하고 취업의 질이 우수해 선호도·합격선이 높은 상경계열이나 통계학과 등에 교차지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그 결과 인문 성향 수험생이 상위권 대학의 이들 전공에 진학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서강대 연세대 한양대 순 = 통합형 수능 첫해인 2022학년 수능보다 2년 차인 2023학년, 그리고 이번 2024학년 수능에서 선택 과목에 따른 점수 차이가 더 벌어졌다. 특히 수학 1~3등급까지 자연계열 수험생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 비율이 상승했고 같은 원점수를 받았을 때 표준점수가 높게 나타나면서 자연계열 지망생에게 유리한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4학년 수능에서는 '미적분' 최고 표준점수가 148점, '확률과 통계' 최고 표준점수가 137점으로 11점이나 차이가 벌어진 점도 교차지원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에서 발표한 2022학년과 2023학년 교차지원 비율을 살펴보면 서강대가 74.63%로 상위권 대학 중 가장 높았고 연세대 67.42%, 한양대 61.46%였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6개 대학 중 고려대가 46.77%, 성균관대가 23.37%로 50% 미만으로 나타났다(표).

특히 서강대는 수학 반영 비율이 43.3%로 다른 대학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 수학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은 학생들이 다수 지원하며 교차지원 비율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성균관대는 타 대학에 비해 교차지원 비율이 2022학년 27.04%, 2023학년 23.37%로 낮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4 정시에선 성균관대를 비롯해 대다수 대학이 과학탐구에 유리한 점수 산출식을 활용한다"며 "올해 정시에서 교차지원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수환 강원 강릉명륜고 교사도 "합격선을 기준으로 건국대 이상의 대학에서 올해 교차지원이 더 활발하게 나타날 것 같다"며 "더 폭넓은 성적대에서 교차지원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한다.

◆신입생 중 중도 포기한 인원은 4857명 = 서울 강남이나 목동 등 교육특구에서는 과학탐구를 선택하는 자연계열 쏠림이 뚜렷하다. 특히 상위권 학생의 쏠림이 두드러진다. 앞에서 수능 수학 등급만 봐도 1~3등급까지 '미적분' 선택자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2024학년 수능에서 1등급 내의 '확률과통계' 비율이 3.5%에 불과했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 교사는 "주요 대학 합격선을 분석했을 때 광운대 선에서 인문계열 지원자의 성적이 앞서게 된다"며 "인문 모집 단위는 자연 모집 단위처럼 특정 과목이 중요하거나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현 대입 환경에서 교차지원을 충분히 고려해볼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진 교사는 "자유롭게 원하는 공부를 하고 학과를 선택하라고 해놓고 대학의 관점에서 과학탐구를 공부한 학생이 인문계열에 지원하면 교차지원이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찌 보면 맞지 않은 논리"라며 "정시는 어쩔 수 없이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대학 위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교사로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털어 놓았다.

지난해 8월말 대학 알리미에 각 대학의 2022학년 중도 포기 학생 현황이 공개됐다. 2022학년 대입은 첫 통합형 수능으로 교차지원이 활발했다고 알려졌기에 중도 포기 비율의 증감에도 관심이 쏠렸다.

서울 주요 15개 대학에 2022학년에 입학한 신입생 중 중도 포기한 인원은 4857명으로 1학년 재적 학생 대비 9.2%에 달했다. 김영편입학원이 발표한 주요 15개 계열별 전체 학년의 중도 포기 추이도 인문·사회계열은 2021년 2.2%에서 2022년에 2.6%로 증가했고, 자연과학계열은 5.4%에서 5.2%로, 공학계열은 4.2%에서 3.8%로 감소했다. 자연계열의 중도 포기 비율이 소폭 감소하고 인문·사회계열의 중도 포기 비율은 증가한 것이다.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교차지원보다는 정시 확대로 인한 기대감이 더 큰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재도전으로 인한 중도 포기 증가는 대학 입장에서도 고민이 크다"고 전한다. 진 교사는 "첨단 분야 학과 신설 및 증원, 약학·의학계열 선호 현상, 여기에 2025학년 의대 정원 확대가 구체화되면 계열 구분 없이 중도 포기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학 입학뿐 아니라 입학 이후 고민도 =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의 벽이 없어져 학생들의 선택 폭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는 교차지원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만 단순히 더 합격선이 높은 대학에 진학하는 수단으로만 활용하기보다 자신의 적성에 대한 고민을 병행해야 한다.

경희대의 2023학년 정시 결과를 보면 프랑스어학과 최종 등록자 중 과탐 선택자는 47.1%, 일본어학과도 57.9%에 달한다. 과탐을 공부했지만 어문계열에 관심이 있어 지원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적으로 경희대에 진학하기 위해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혀 관심 없는 모집 단위에 지원할 경우 학교생활이나 전공 공부를 잘 따라갈 수 있을지에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진 교사는 "정시 지원 시 대학 합격만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과 적응은 일단 합격하고 나서 해결할 문제라는 게 학생들의 생각"이라며 "대학마다 복수전공 선택 기준이 달라 주전공의 학점이 복수전공을 선택하는 핵심 요인이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전과를 고려한다면 학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입학 전공 역시 본인에게 맞아야 한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수능은 예측이 힘든 시험으로 변수가 많아 1년을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은 영역에서 발목을 잡힐 수 있는 시험이기도하다"며 "현재 자신의 점수를 토대로 신중하게 지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수 기자 · 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