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 핵심정보 공유한 뒤 LTV(담보인정비율) 요율 결정했다
공정위 '대형은행끼리 정보공유, 대출이용자 이익 제한' 판단
LTV 요율 정보, 국민은 알 수 없어 … 적용종류만 7500여건
은행 "참고자료" … "은행대출 부족하면 2금융권서 더 빌려야"
# 수도권에 사는 A씨는 사업상 5억원이 필요했다. 공시지가 6억원인 빌라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로 했다. 시중은행을 찾아 대출상담을 받았지만 최대 3억3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A씨 집의 담보인정비율(LTV)이 55%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은행창구를 찾았지만 답을 비슷했다. 그는 결국 이자가 훨씬 비싼 2금융권을 통해 나머지 돈을 조달해야했다. 겨우 사업자금을 마련한 A씨는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은행은 여러 곳인데 왜 대출조건은 한결같았을까"
◆갱신 직전 서로 정보 공유 = 해답은 '시중은행의 정보공유'에 있었다. 4대 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은 매년 1~2차례 LTV 요율을 갱신한다. 우리나라 LTV 요율의 종류는 무려 7500여 가지다. 250개 시군구와 주택종류, 대지의 지목 등에 따라 다르게 요율을 정하기 때문이다. 4대 은행들은 이를 엑셀파일로 '조견표'를 만들어 요율 갱신 직전에 서로 교환했다.
다른 은행들의 조건을 본 뒤 자사의 LTV 요율을 결정한 것이다. 나머지 은행들이 B아파트의 LTV를 60%로 제한하고 있다면 60% 안팎에서 요율을 갱신하는 구조다. 은행의 LTV가 한결같은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이런 행위를 담합으로 판단하고 지난 8일 각 은행에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보냈다. 정부 관계자는 9일 "4대 은행의 이런 행위는 결국 대출조건 결정과정에서 자유경쟁을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후생을 가로막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쟁제한이 소비자피해로 이어져 = 공정위는 은행이 담보대출 거래조건에 해당하는 LTV를 사전에 공유한 행위가 '정보교환 담합'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국민은행은 1년에 2번, 신한·우리·하나은행은 1년에 1번 지역과 부동산 종류별로 LTV를 설정한다. 지역과 부동산 종류에 따라 최대 7500개의 요율을 갱신한다.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4대 은행은 LTV를 정할 시기가 되면 각 은행에서 LTV 자료를 공유 받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실무자들이 서로 만나 전달받는 방식이었다.
은행마다 각자 알고리즘을 통해 LTV를 정하는데 일부 은행은 경쟁 은행의 LTV를 변수로 설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사 은행의 특정 지역 LTV가 다른 은행보다 높다면 이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식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정보교환이 경쟁 제한과 금융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은행이 경쟁사의 LTV 정보를 몰랐다면 자사 LTV를 경쟁적으로 높이면서 대출 유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서로 공유하면서 은행간 경쟁에 따른 LTV 상향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정보교환이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결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대출이용자들은 이자율이 훨씬 높은 제2금융권 등을 찾아야 한다. 경쟁제한이 소비자 피해나 이익제한으로 이어졌다는 논리다.
실제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NH농협과 IBK기업 등 다른 은행과 비교하면 4대 은행의 LTV는 훨씬 낮게 설정돼왔다고 심사보고서는 지적했다. 또 2019~2022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경매 낙찰가율이 높아질 때도 4대 은행의 LTV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
◆정보담합, 첫 사례 = 하지만 은행권은 반발하고 있다. LTV 정보교환으로 인한 실질적 이익이 없어 담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출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4대 은행 입장에서 LTV를 높여 대출을 무리하게 늘릴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정보 교환을 통해 금리를 높인 것도 아니고, 은행 입장에서 수익이 되는 대출이 덜 나갔다는 것인데 실질적인 소비자 피해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은행들이 서로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LTV를 공유한 사실이 위법하다는 공정위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담보물에 대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사례를 보다 폭넓게 분석해 합리적인 조건을 도출하기 위한 업무 과정이란 설명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 말부터 은행 관련 담합 조사에 착수, 여신 담당 부서에서 예대 금리와 수수료 담합 여부 등을 조사한 바 있다. 이번 심사보고서에는 지난해 초 제기됐던 대출금리 담합 의혹은 담기지 않았다.
한편 공정위가 이번에 은행에 적용한 '정보교환 담합'은 이번이 첫 사례다. 2021년 12월 관련 법이 개정된 뒤 '정보교환 담합'만을 적용해 제재한 적이 없다. 개정 법률은 경쟁 사업자끼리 가격·생산량과 같은 정보를 사전에 교환하는 방식으로 시장 경쟁을 제한하면 담합으로 제재하도록 했다. 공정위가 법 개정에 맞춰 개정한 카르텔 분야 8개 행정규칙(심사지침)을 보면 사업자가 경쟁사업자에 직·간접적으로 가격, 생산량, 원가와 같은 민감한 정보를 알리는 행위를 정보교환으로 본다. 구두나 전화를 통한 정보 전달뿐 아니라 사업자단체와 같은 매개를 통해 알리는 것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