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법에서 시간이 갖는 의미
새해다.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아쉬워하기도 하고, 더디게 간다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시간은 삶의 고통을 잊게 해주고 삶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시간은 결국 생명도 소멸시킨다.
법도 시효가 있다. 시간이 법적 권리를 소멸시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형성된 법적 평화를 위해서다. 흔히 '법적 안정성'이라고 한다. 검사 시절 당한 강제추행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인정되더라도 민법의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권이 부정됐다. 과거의 법적 권리보다 현재의 법적 안정성을 우선하는 것이다.
시간은 국가형벌권도 소멸시킨다. 공소시효제도가 있다. 형사사건 처리는 흔히 수사 기소 재판 집행 단계로 이뤄지는데, 수사단계에서 범죄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검사의 기소가 공소시효를 넘겼다면 효력이 없다. 시간이 검사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피의자에 대해 4년 후 보복성 기소를 한 검사의 행위가 공소시효 7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따져보지 않기도 한다. 범죄자를 처벌해 진실을 밝히고 법적 정의를 세우기보다는 공소시효가 부여하는 범죄자의 법적 평화와 안정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시간은 국가형벌권도 소멸시켜
흔히 형의 시효라고 부르는 제도도 공소시효와 그 취지가 같다. 기소가 되어 재판에서 형벌의 선고를 받고 판결이 확정된 후 그 형벌의 집행을 받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집행이 면제된다. 공소시효는 시간이 국가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반면 집행시효는 시간이 국가의 집행권을 소멸시킨다.
예컨대 재판에서 벌금을 선고받았더라도 집행되지 않은 채 5년이 지나면 형의 집행이 면제된다. 정확히 말하면 형의 집행시효다. 그런데 형벌에 대해서만 집행시효가 인정되고 있으나 향후에는 형벌의 다른 형태인 보안처분에 대해서도 인정되어야 한다.
형사시효는 범죄자 처벌이라는 실체적 또는 실질적 정의의 실현보다 현재의 법적 안정성에 가치를 두는 제도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가 되어 버린 범죄행위에 대한 형벌목적 실현이 부적합하다는 사고에 근거한다. 그래서 흔히 법적 정의(正義)를 '실질적 정의와 법적 안정성이 균형을 이룬 상태'로 정의(定義)를 한다.
형법의 소급효금지원칙은 법적 안정성의 보루다. 형법 제1조 제1항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정의를 추구할 수 없다. 행위 당시에 처벌하는 규정이 없었는데 그 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 처벌규정을 만들어서 그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
공소시효가 완성된 이후 공소시효를 정지 또는 연장하거나 배제하는 법률을 제정해 처벌할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는 12.12군사반란사건과 5.18내란사건처럼 헌정질서파괴범죄라면 가능하다고 봤다. 집권 과정에서 불의를 범한 자들을 처벌해 정의를 회복하는 것은 중대한 공적 이익인 반면 이들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사적 이익으로서 미약하다는 것이다.
2023년 8월 8일 형법을 개정해 사형에 대한 30년 집행시효를 폐지했고, 이 규정이 소급해서 적용되도록 했다. 2023년 11월 23일로 사형집행을 위해 구금된 지 30년이 되는 사형확정자를 두고 사형의 집행을 면제해야 하는지 논란을 제거하고,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의 취지에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아 한국이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집행 대기 중인 사형확정자에게도 집행시효가 적용되는지, 이들의 구금기간도 집행시효에 포함되는지, 궁극적으로 사형제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적시에 실현된 정의가 '법적 정의'
정의가 지연되고 있다. 헌법 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기준 1심부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민사재판은 평균 1095일, 형사재판은 평균 586일 걸렸고, 헌법재판소에는 3165일이 경과된 사건도 있다. 정의를 기다리다 세상을 뜨기도 한다. 적시에 실현된 정의가 법적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