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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수렁이 되어 버린 홍해

2024-01-15 11:39:38 게재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세계의 관심과 우려는 전쟁의 확산 여부였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군사적 동맹국인 데다 서남아시아 지역의 거의 유일한 민주국가로 서방의 정치적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다른 한편 하마스는 가자 지역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름으로 아랍 대중의 지원을 받으며 서남아시아에서 미국과 대립해 온 이란의 대리 세력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미국·서방의 세력과 하마스·이란·아랍의 진영이 가자 지구에서 마주치는 모습이었다.

실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가자 지역을 넘어 두 방향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하나는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교전을 벌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예멘에서 이란의 도움으로 내전을 벌여온 후티 세력이 이스라엘을 향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에 나섰고, 동시에 홍해를 항해하는 선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레바논으로의 확전은 그나마 이스라엘을 둘러싼 지역적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홍해는 세계 경제의 숨통이라고 할만한 지정학적 요지다.

홍해는 붉은 바다라는 이름이나 실제는 호수에 가까운 형세다. 홍해의 북쪽은 원래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시나이 반도로 닫혀 있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를 뚫어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기 전까지는. 남쪽은 인도양과 연결되었지만 바브엘만데브 해협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아랍어로 '눈물의 문'이라는 의미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전통적으로 항해가 어려운 지역임을 잘 보여 준다.

후티 반군 공격으로 홍해 항해 위험성 가중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홍해는 전쟁의 수렁에 서서히 빠져가는 모양새다. '눈물의 문' 북쪽에 있는 예멘에서는 후티 반군이 10년 가까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세력과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의 후원에 의존하는 정부군이 다툼을 벌여왔다. 다만 2022년 유엔 중재로 싸움이 잦아드는 상황이었는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다시 불을 붙인 형국이다.

후티 세력은 후원국 이란을 대리해 이스라엘과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아랍 세계의 친 팔레스타인 여론을 등에 업고 내전에서 득세하려는 계산이다. 홍해를 항해하는 선박 가운데 이스라엘과 관련된 배를 공격하고 나섰고 지난 10월 이후 그 숫자는 30척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공격받은 선박들의 이스라엘과 관련성이 모호한 가운데 전반적으로 홍해를 통한 항해는 위험해졌다.

지난해 10월 해협 통행량은 22% 정도 줄었다고 알려졌다. 수에즈 운하의 통행료가 정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집트가 최근 통행량의 축소를 메우기 위해 통행료를 인상했을 정도다. 19세기 이전처럼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돌아가는 우회 항로는 더 많은 에너지 소비와 운임의 상승을 가져온다. 유럽의 로테르담에서 아시아의 싱가포르까지 홍해를 통하면 1만5600km이나 희망봉으로 돌면 2만1700km가 된다.

'눈물의 문' 남쪽에는 지부티라는 작은 나라가 있는데 지정학적 요충지로 강대국에 군사기지를 임대해 먹고사는 국가다. 원래 지부티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를 비롯해 G2를 형성하는 미국과 중국이 모두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양과 홍해 등에서 항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지난달 '번영의 수호자'(Prosperity guardian)라는 작전명의 국제 군사협력을 추진했다.

미국 주도 군사작전, 영국 외 호응 못얻어

지난주 후티 세력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폭격이 보여주듯 미국 주도의 군사작전에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의 적극적 동참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미국을 따라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에 서는 것을 망설이기 때문이다. 홍해를 통해 이동하는 화물의 75%가 유럽의 수출임에도 유럽 세력은 여전히 수동적 입장을 견지하며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셈이다.

이스라엘을 넘어 미국과 영국까지 공격하겠다는 후티 세력의 확전 공언은 세계정치경제 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세계 해운의 무려 12%가 홍해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만에서는 독립적 성향이 강한 민진당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면서 또 다른 지정학적 불안의 요소가 등장했다. 연초부터 지역적으로 제한된 문제가 지구적 심각성의 위협을 가하는 살얼음판의 국제정세가 펼쳐지고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