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적연금 현물급여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

2024-01-18 11:30:50 게재
정태규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역본부장

지난 연말 사회공헌활동 일환으로 연탄배달과 어르신들 배식봉사를 한 적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연탄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겠지만 추운 겨울을 보내려면 여전히 연탄이 필요한 이웃이 많아 필자가 소속된 국민연금공단에서는 해마다 겨울이면 전국 각지에서 연탄을 나르곤 한다.

봉사를 마치고 할머니 한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편 사별 후 국민연금(유족연금)과 기초연금으로 한달 한달을 살고 계신단다. 이 식당은 바우처로 밥값을 계산할 수 있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거의 매일 오시지만 사시는 곳이 산복도로 모퉁이에 있어 아픈 무릎을 이끌고 오르락내리락 다니시는 것도 큰일이라고 하신다.

연금을 찾아 생필품을 구입해야 하지만 거래하는 은행은 더 멀어 노구를 이끌고 시내 나들이를 한다는 것은 큰마음을 먹어야 가능하시단다. 그러시면서 "연금을 돈으로만 주지 말고 일정 금액은 식자재나 생활용품을 사서 택배로 보내주면 더 고맙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예전에 봤던 TV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산속에 거주하는 사람인데 1~2주에 한번 정도 비포장 산길을 걷거나 오가는 버스를 한시간 남짓 타고 읍내로 나가 산나물도 팔고 연금을 찾아 생필품을 구입해서 다시 그 길을 돌아오는 내용이었다.

생필품 더 절실한 고령연금수급자 애환

택배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격오지 등에 연세가 많으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매월 연금을 받는다고 해서 꼭 반가운 일인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보다는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이 더 절실하신 분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중 농어촌에 거주하는 사람은 약 8%인 415만명, 국민연금 수급자 650만명을 비롯한 공적연금을 받는 사람은 약 720만명, 그리고 70세 이상 고령인구 약 632만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이분들에게는 은행에 입금된 연금을 찾는 것도 일이지만 찾은 현금으로 생필품을 구매해서 생활하는 게 더 큰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만이라도 연금액의 일정 부분을 생필품 등 현물을 구매해 택배나 다른 배송체계를 활용해 배달을 해 주는 '현물급여' 시행을 제안해본다.

현물급여 도입은 공단 입장에서는 연금지급의 관리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수급자의 선택권 보장과 연금을 통한 적절한 노후생활 영위라는 측면에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장 전면 시행이 어렵다면 일부 지역이라도 시범사업을 해 보고 만족도 등을 고려해 차츰 확대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현물급여는 공단 차원에서만 고민해선 안된다. 수급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내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지자체와 연계도 필수적이다. 지역의 우수한 상품이 연금수급자의 현물급여로 연계될 때 수급자의 선택권은 강화되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되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

수급자 선택권 보장 등 이점 많아

우리 사회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어르신들이 연금을 받아 편안한 노후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매우 당연스런 일임에도 여러가지 형편으로 그 연금을 사용하는데 있어 불편함이 따른다면 국가나 우리 사회가 이분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4년 새해를 맞아 공적연금의 현물급여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