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 '의료용 마약'처방 급증

2024-01-22 11:25:55 게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보고서 … '펜타닐' 84% 늘어, 오남용 우려

청소년의 1인당 의료용 마약류 처방량이 3년 새 50% 가까이 늘어났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오·남용 위험성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학계에 따르면 김낭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은 최근 '청소년 마약류범죄 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약물에 취해 차를 몰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의사 염 모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이번 보고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용 마약류 취급현황 통계'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2022년 환자 1946만명이 의료용 마약류 18억7360만개(정)를 처방받았다. 이는 2019년(1850만명·16억8225만개)과 비교해 환자 수는 5%, 처방량은 11% 각각 증가했다.

10대 이하의 경우 처방 환자 수는 줄어든 반면 처방량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9년에는 10대 이하 67만명이 3608만개를, 2022년에는 61만명이 4932만개를 처방받았다.

이에 따라 10대 이하 마약류 처방 환자 1인당 처방량은 2019년 54개에서 2022년 81개로 3년 만에 48.6% 증가했다. 전체 연령대의 1인당 처방량이 91개에서 96개로 5.9% 늘어난 것과 비교해 증가세가 가파르다.

특히 같은 기간 1인당 펜타닐 패치 처방량은 전체 연령대에서 18개→19개로 4.2% 증가한데 반해 20세 미만에서는 45개에서 83개로 84.2% 급증했다.

의사가 처방한 의료용 마약류 사용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마약 투약을 목적으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거나, 이를 유통하는 등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 특히 10대 마약류 사범이 증가하면서 청소년의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에 대한 관리감독이 요구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마약류사범 누적 검거 인원은 1만7152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전년 연간 검거 인원(1만2387명)보다 38.5% 많다.

10대 마약 사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텔레그램과 다크웹 등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마약류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체 검거 인원에서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7.7%다. 지난해에 2.4% 정도였는데 증가세가 가파르다.

최근에는 10대 마약류 사범이 단순 호기심에 의한 투약뿐 아니라 밀반입·유통 범죄까지 가담하는 모습을 보여 심각성이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10대의 경우 다이어트 약으로 알려진 향정신성 의약품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의료용 마약류는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17세 미만은 처방이 안 되다 보니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구매하는 사례가 많이 적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해 7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102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마약류 식욕억제제인 디에타민을 SNS로 불법 판매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는 디에타민은 펜타민 성분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마약류다.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 식욕을 억제하는 펜타민은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오·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적발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10대였다. 직접 판매를 하다가 적발된 10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나비약' 알약을 개당 5000∼1만원에 거래한 것으로 조사됐다.

10대가 본격적으로 마약류 유통에 뛰어든 경우도 있다.

지난 2021년 당시 고등학생 등 10대 42명이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패치를 투약하거나 유통한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당시 19세였던 B씨는 11개월 동안 부산·경남 소재의 병원이나 약국 등에서 자신이나 타인의 명의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이를 다른 10대들에게 판매하거나 직접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 등에 따르면 이들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패치를 공원과 상가 화장실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투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저자들은 "청소년 마약류 범죄의 특성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영역이 많다"며 "10대 이하 의료용 마약류 1인당 처방량이 많이 증가해 잠재적 위험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자들은 또래 집단과 함께 행동하며 비행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청소년기 발달 단계 특성과 SNS 등을 통해 마약류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 환경 변화 등으로 청소년들이 마약류 범죄에 내몰리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중심의 예방 교육과 단속 초기 치료 연계 체계 구축, 국가연구기관 및 상시 중앙관리기구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