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정치리더십의 위기 '원-트릭 포니'
전후 성공한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으로 다당제와 총리민주주의에 기반한 독일모델을 꼽을 수 있다. 국민이 행복해하고 역대 모든 정부들은 시대에 맞게 큰 실적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G7국가들 중 행복순위 1위, 복지국가, 평화통일, 유럽최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최근 독일 정치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외 새 국면과 현안들에 대한 대응에서 잘 나타난다. 대외적으로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데탕트의 무용론 및 에너지비용 폭등과 유럽연합의 분열, 국내적으로 연방정부의 코로나 예산 전용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판결, 농부들 대규모 트럭시위, 특히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의 부상 등이다.
정치리더십의 위기는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과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민주국가들의 정치리더십이 왜 위기로 가고 있을까? 이에 대해 스위스의 고급지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ZZ)은 '원-트릭 포니(one-trick pony)'로 설명한다. 다른 레퍼토리가 없고 오직 한가지 노래만 부른다는 뜻이다. 미국 폴 사이먼 가수가 이 제목으로 노래 불러 히트치기도 했다.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번이지'라는 격언이 있듯이 한곡조만 듣게 되면 곧 식상해진다는 지적이다. 정치로 비유하면 한가지 재주만 가지고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을 할 수 없고 곧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다는 비유다.
한가지 노래만 들으니 질린다고
독일의 경우 신호등 연정(사민당+녹색당+자민당) 현 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 동독에서만 일던 AFD 바람이 구서독지역인 헤센과 바이에른주 선거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최근 독일전역 여론조사에서 AFD 지지율은 25%로 기민당(34%)에 이어 2위를 차지, 집권당인 사민당(18%) 녹색당(14%) 자민당(7%)을 앞선다. 심지어 다음 총선에서 AFD가 집권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13년 창당한 AFD의 부상에도 11년 동안 기민당 사민당 등 기성 정당들은 "'나치의 후예'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만 확성기를 트는 것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원-트릭 포니'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왜 극우정당 지지도가 25%가 되었는지에 대한 기성 정당의 반성이 없었다는 비판이다.
극우정당이 부상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난민·이주민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동 난민 125만명을 받아들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몸담았던 중도우파 기민당에서 중도좌파 사민당, 진보적인 녹색당까지 난민문제와 연관된 극우정당의 부상을 '똥'으로 비유하면서 피하는 자세가 더 문제라는 비판이다.
게다가 덮친 것으로 우크라-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독일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독일은 제1차세계대전 패배 후 전쟁배상금 등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당시 오죽하면 화폐를 불쏘시개로 쓸 정도로 하루 자고 나면 몇천배의 물가상승으로 시민들은 고통을 받았다. 그 결과 나치가 선거로 집권했고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고 수천만 명의 인명피해를 입혔다. 현 독일정부의 집권당인 사민당은 데탕트만, 녹색당은 환경만 '원-트릭 포니'를 외치면서 민생해결에 실패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바이든 대통령 역시 트럼프와의 대선경쟁에서 밀리는 가장 큰 이유로 '고물가와 고금리' 경제상황을 꼽는다.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하는 여론조사가 대세다. 과거 독일에서 극우 포퓰리즘 히틀러의 나치가 통했고 다시 그 후예인 AFD가 세력을 증대시켜가듯이, 미국에서도 트럼프 포퓰리즘이 다시 먹혀들고 있다. 그의 대선공약 '아젠다 47'이 파격적이다.
새 비전과 정책 있어야 포퓰리즘 막아
전문가들은 포퓰리즘이 통하는 이유로 "진실을 비틀고 위협하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반민주주의 문법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기존 정부들 및 정당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망국으로 가는 포퓰리즘을 막는 길은 '원-트릭 포니'가 아닌 기존 정당들이 새 비전과 정책으로 혁신하고 민생문제들을 스피드하게 해결하거나 혹은 새 정치세력 등장에 달려있다. 서로 총질 혹은 증오 전략으로는 선택받을 수 없다. 총선을 앞 둔 우리 기성 정당들과 이에 도전하는 신당들에게도 주는 시시점이다. 담대한 인민들은 국가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라를 구할 통 큰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