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 ⑥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공감능력 없는 정치 뭐하러 하나 … 국민 삶 속 들어오라"
정치에 관심 없다가 참사 후 정치 한복판 뛰어들어 겪어
정치인들이 국민들 아픔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에 절망
고통 느끼는 국민들을 위로는커녕 더 구렁텅이 빠뜨려
대통령의 위로 기다렸는데 1년 동안 한 번도 안 만나줘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서울시청 앞 희생자 분향소에 향을 피웠다. 잠시 묵념 후 빼곡히 세워진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였던 이 운영위원장의 딸 고 이주영 씨의 영정사진도 매일 이 운영위원장을 맞아준다. 분향소가 세워진 후 매일 습관처럼, 기도처럼 하는 일이다. 참사 이후 400일이 넘도록 희생자들의 부모와 부대끼다 보니 이제 희생자 얼굴을 보면 그들과 똑 닮은 부모들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은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부재, 동시에 정치의 필요성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2022년 10월 29일 이전만 해도 정치란 저 멀리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이후 삶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울어도 울어도 죽은 자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달려갈 곳은 정치권밖에 없었다. 국회에 애원하고 대통령실 앞에서 통곡했다. 한겨울 오체투지와 단식을 거쳐 참사 438일 만에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통과된 후 자식들 영전에 특별법을 바쳤다. 법 시행을 간절히 바랐던 그들은 여당의 거부권 건의 방침에 또 한번 무너졌다. 대통령실 앞으로 달려간 유족들은 머리를 깎았다. 삭발한 한 어머니는 "159명의 희생자들, 우리 아이들을 놓고 어떻게 정치놀음을 합니까. (대한민국은) 새끼 키우고 살 수 없는 나라입니다"라며 오열했다.
정치와 관계없는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정치권 핫이슈의 정중앙을 통과하고 있는 이태원참사 유가족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물었다. 이 운영원장과 인터뷰는 15일 서울시청 분향소에서 대면으로, 21일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졌다. 대면 인터뷰 3일 후인 18일 여당이 거부권 건의 방침을 밝히자 이 운영위원장도 항의하며 삭발했다. 이 운영위원장과 유족들은 거부권 건의를 의결할 것으로 알려진 23일 국무회의를 앞두고 22일 1만5900번의 절을 하며 법안 신속 공포를 기원할 예정이다.
■참사 이전에 정치를 어떻게 생각했나.
참사 이전에도 정치 상황은 굉장히 답답했다. 정치 뉴스를 보면 볼수록 갑갑해서 회피하곤 했다. 기대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는 게 정확하겠다. 그러다 참사가 발생하고 난 이후에 정치의 모습은 제가 참사 전 느꼈던 정치에 대한 회의감이 훨씬 더 깊게 각인되게 됐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력감을 느끼게 됐다.
■참사 이후 국회 국정조사부터 특별법 입법에 이르기까지 정치권과 떼놓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나.
참사가 발생하고 난 이후 저는 물론 유가족들은 정치의 한복판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정치인들이 참사를 이야기하며 2차가해성 발언, 혐오적 발언을 하더라. 그런 정치인들의 말을 그들의 지지자나 참사를 모르는 국민들이 그대로 받아서 또 한번 가해를 하곤 했다. 정치인들이 가해의 중심에 선 것이다.
또 한 가지 느낀 것은 정치인들이 공감능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거 때는 국민들 삶 속에 국민들 위해 정치 하겠노라 하지만 실제로 정치에 발을 들여 배지를 달고 난 이후에는 국민들의 어려움에 공감하지를 않더라. 정치인들이 일을 잘 못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의 아픈 삶을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이 없다는 것은 거의 절망이었다.
■정치인들의 '무공감'을 어디서 느꼈나.
유가족들이 적이 아니지 않느냐. 그냥 국민일 뿐이다. 그런데 특히 여당 정치인들을 보면 유가족들을 야당을 대하듯, 적을 대하듯 하더라. 여당 의원들이 단 한 명도 분향소를 찾아오지 않는 걸 보고 정말 당리당략 때문인 것인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깨부술 수 있는 그런 능력은 없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만약 그런 의지와 생각도 없이 정치를 한다면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정치가 유족들과 희생자들 곁에 없다고 느낀 것인가.
단지 이태원참사 유가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참사를 겪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인데 이 사회에는 우리처럼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약자가 많더라. 솔직히 그 전엔 관심이 없었으니 눈길을 돌리지 못했는데 우리가 직접 길거리에 나와 아픔을 호소하다 보니 다른 약자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모든 사람들이 정치권의 따뜻한 위로나 위안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너무나 답답했다. 모든 문제가 해결하기 힘들 수는 있다. 그와는 별개로 정치인들이 그들이 느끼는 아픔에 대해 충분히 듣고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원하는 부분이 해소되지 않더라도 이 사회에 살아갈 수 있는 조그마한 기운을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마음을 더 힘들게 해버리는 그런 사회더라. 이 대한민국이.
■정치인들 입장에선 해결도 못해주는데 위로가 무슨 소용이냐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교통사고 가해자가 다친 피해자에게 '나는 아무 것도 할 게 없으니 알아서 법적으로 처리하시오' 이러면 피해자가 과연 마음이 풀리겠나. 가해자가 정말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진솔하게 사과를 하면 차라리 피해자가 약간의 아픔이 있더라도 용서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유족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연히 찾아와 위로해주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초기에 분향소 차리고 애도기간 정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참사 발생 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번도 유가족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오송참사 유가족도 단 한번 만나지 않으셨다. 이런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대통령이 맞느냐.
■대통령은 왜 유가족을 만나지 않고 외면할까.
윤 대통령이 우리를 외면하는 이유는 자기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유가족을 만나면 사과를 해야 할 텐데 그걸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잘못했다는 인정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의 주역들의 직을 1년이 넘는 내내 유지시켜준 것 아닐까. 그게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정부의 이태원 참사 책임을 정말 인정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태원참사는 정부의 부재로 생긴 참사라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특별법이 시행돼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시작되는 순간 그 문제가 다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는 있다. 애초에 진화를 했으면 이렇게까지 골치아픈 상황이 안 왔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한 명이라도 해임을 시켰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왔을 것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크나큰 저항에 부딪힐 거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국회 국정조사 때 참사 당시 느낀 여러 의문을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상가건물 안에 딸과 희생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구조대원에게 제대로 도움을 받았는지, 못 받았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희생자들을 개별 병원으로 분산해 버려서 유가족들이 가족을 찾기 위해 헤맸는데 왜 이런 조치가 이뤄졌는지 등등의 의문점이다. 이런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그대로인가.
특별법 거부권을 건의하면서 여당에선 이미 밝혀질 것은 다 밝혀졌다고 하는데 실소가 나온다. 그동안 경찰 검찰에서 들여다본 것은 형사적으로 문제가 있냐 없냐를 들여다 본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참사 후에 희생자들을 지방 각 곳으로 분산시킨 게 만약 위법한 게 아니라 하더라도 왜 그랬는지 알 권리가 우리들에게는 있지 않느냐. 참사 초기에 그런 부분들을 브리핑을 해달라고 정부에게 여러 번 요청했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궁금한 그대로다. 만약 정부가 실수했고, 미흡했고, 매뉴얼이 없어 그런 거라면 미안하다 인정하면 되지 않나. 만약 매뉴얼 때문이라고 밝쳐진다면 매뉴얼을 뜯어고쳐야 재발방지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것을 전혀 하지 않으니 우리가 원인규명을 해서 재발방지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공감능력이다. 공감능력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감이 사라질 것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에게 다가가서 보여주는 눈물 한 방울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그런 모습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안 보이고 없다는 게 안타깝다. 정말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서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학원이라도 다니면 좋겠다. 각 정당들이 공천할 때도 스펙도 봐야겠지만 이 사람이 국민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스펙이 좋더라도 공감능력이 떨어지면 언젠가는 사고를 칠 것이다.
■정치가 유가족들의 일상회복에 도움을 줄까.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다 깨져 버렸다. 지금의 일상은 유가족들끼리만 찾을 수 있다. 술을 마셔도 유가족들끼리만 마실 수 있다. 만약 정치권이 우리의 일상을 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왜곡된 시선을 말할 게 아니라 이번 참사가 희생자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고 사람들에게 인지시켜서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만약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정말 억울하겠다, 가족을 한순간에 잃은 게 얼마나 억울하냐고 서로 공감하게 만들어준다면 그나마 유가족들이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손가락질 받는 느낌이야.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손가락질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문에 움츠러들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유가족들끼리 구석에 모여서 괴로워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것을 정치에서 풀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