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AX(AI전환) 시대 | 4. 에너지·건설
AI로 에너지 수요·공급 예측 … 전력 안전성 높인다
빅데이터로 전력수요 기하급수적 증가 전망
넷플릭스처럼 고객맞춤형 서비스 제공 가능
인공지능(AI)이 인간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알파고에서 시작된 미풍이 2022년 말 챗GPT 등장과 함께 광풍으로 변했다. 산업측면에선 일부 첨단 분야를 넘어 모든 영역에 AI가 더해지면서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 AI전환(AX)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내일신문은 생성형AI를 비롯한 다양한 AI 기술이 산업 각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사례를 통해 확인해 보고자 한다.
세계 에너지시장은 전력수요 증가와 탈탄소화, 디지털화로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전력수요와 공급의 관리, 에너지소비와 시스템 효율화, 재생에너지 출력 예측 등은 주과제로 떠올랐다. 전력 산업 건물 교통부문의 상호작용과 연계성도 커졌다.
이러한 흐름은 인공지능(AI)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11월 'AI와 에너지가 새로운 파워 커플인 이유'(Why AI and energy are the new power couple)라는 글에서 "AI는 이미 에너지시스템에서 50가지 이상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며 "기술시장 규모는 최대 130억달러"라고 밝혔다.
이글을 쓴 에너지분석가 비다 로자리트·잭 밀러·오성진씨는 "에너지부문에서 AI의 일반적인 용도 중 하나는 수요와 공급 예측을 개선하는 것 이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은 에너지산업에 있어서도 빠른 속도로 접목되며 시스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9~12일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는 '기·승·전·AI'로 표현될 만큼 AI 미래기술이 대세였다. 에너지부문에서도 AI와 다양한 융합기술을 선보였다.
삼성전자와 테슬라의 '넷 제로 홈'(Net Zero Home) 협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양사는 테슬라의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태양광 인버터와 삼성전자의 스마트싱스(IoT 플랫폼) 에너지를 연동해 고객들에게 전기차 충전·배터리 사용경험을 선사했다.
태풍이나 폭설 등 자연재해가 예상될 때는 태슬라앱에서 '스톰 워치' 알림을 삼성전자 TV로 전송한다. 전기요금이 비싼 시간대를 피해 로봇청소기를 충전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 =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11월 펴낸 'AI와 에너지가 새로운 파워 커플인 이유'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과 AI 자회사 딥마인드는 2019년 700MW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소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신경망을 개발했다.
과거 기상조건·풍속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대 36시간 전에 미래발전량을 예측하는 모델이다. 딥마인드는 최근 10일간의 일기예보를 제공하는 AI를 출시하기도 했다.
에너지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 유연성을 확보하고, 유지관리 효율성을 제고할 수도 있다.
유럽의 전기사업회사인 E.ON은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전력생산 패턴을 분석하고 불일치 사항을 표시함으로써 케이블 교체시기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탈리아 전력회사 Enel은 전력선에 센서를 설치, 정전횟수를 15% 이상 줄였고, 중국 국영 전력망공사는 AI를 사용해 고객장비의 문제를 식별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전력생산 패턴 분석 및 시설·장비 모니터링 = 이 외에도 에너지와 AI의 결합은 에너지산업 현장에 점차 파고들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바카빌시는 AI로 태양광 설치허가 기간을 11개월(1년→1개월) 앞당겼다. 스타트업 심비엄이 개발한 태양광 허가 플랫폼을 활용해서다. 이 플랫폼은 주거용 옥상 태양광 시스템에 대한 건축 부서의 허가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표준화했다. 규정을 준수하는 경우 허가서를 자동 발급한다.
GE버노바는 2023년 11월 재생에너지 활용을 극대화하는 소프트웨어 플릿 오케스트레이션을 출시했다. 플릿 오케스트레이션은 변동성이 심한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어 기존 전력망과 연계해 전력공급이 끊기지 않으면서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극대화해준다.
발전량 예측 주기는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15분에서 일주일까지 설정할 수 있다. 또 세대별 전력수요를 분석해 발전시설 가동주기를 조정함으로써 발전비용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수준의 예비전력 확보도 가능하다.
스페인에 본사는 둔 에너지관리 소프트웨어 스타트엄 델포스는 재생에너지기업을 대상으로 AI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작업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제품을 개발했다. 10GW 이상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모니터링해 운영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발전량을 3~5% 향상시켰다. 효율도 개선해 부품교환비용을 30% 줄였다.
한국중부발전은 9일 풍력발전량 예측 AI모델을 공유한다고 밝혔다. 중부발전은 '데이터안심구역'을 활용해 풍력발전 운전정보를 제공하고, 민간기업은 새로운 기상예보 보정 모델을 적용해 공동 개발했다.
데이터안심구역은 접하기 힘든 미개방 데이터를 누구나 안전하게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말한다. 이 모델은 제주지역의 육상지형에서도 풍력 발전량을 정확도 높게 예측할 수 있어 전력망 안정성 확보에 기여할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먹는 하마 = AI가 에너지분야에 확대 적용되면서 전력수요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AI가 분석하는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수집·저장·분석할 수있는 데이터센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전 경영연구원은 지난해 10월 프랑스의 에너지관리 및 자동화 전문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Schneider Electric) 보고서를 토대로 'AI 기술의 부각과 전력수요 영향'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적용한 기존 및 신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서 전력수요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AI서버는 기존 서버보다 머신러닝·딥러닝 등 실시간으로 많은 계산과 추론이 요구돼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대용량 처리능력이 필요하다.
머신러닝은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상관관계와 특성을 찾아내고, 여기에 나타난 패턴으로 결론을 내리는 기술이다. 딥러닝은 머신러닝을 뛰어넘어 축적된 데이터만 분석하지 않고 해당 데이터를 통해 학습까지 하는 기계능력으로 최적의 결론을 유추한다.
보고서는 "AI를 적용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율은 기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율보다 최대 3.3배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터센터의 전체 전력수요 연평균 증가율은 2028년까지 약 11%로 예상됐으나 AI서버 등장으로 26~36%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많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와 과열상황에서 장비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냉각시스템의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에너지효율·탄소중립 실현에도 기여 = 보고서는 또 전 세계 산업중 AI 기술을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한 비중은 약 13%라고 밝혔다.
하지만 에너지산업과 전력·가스 분야는 아직 3%, 2% 수준에 불과해 향후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한된 범위에서 일부 제품에 AI를 적용한 경우는 47~50%에 이른다.
예를 들어 전력판매회사 등 에너지기업들도 고객별로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추천해주는 넷플릭스처럼 고객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전기차 충전의 경우 지역내 전기차 보유대수, 배터리 용량 등을 분석해 부하(소비)를 예측하고, 고객에게 부하가 낮은 시간을 추천하는 형태다.
또 전력회사는 AI 정보를 이용해 수요관리·에너지효율사업 등에 대한 고객 타켓팅을 할 수 있다.
기술개발과 함께 해결과제도 있다.
최우성 전력연구원 R&D비즈팀장은 '전력 및 에너지분야에서의 AI 활용과 과제'라는 글에서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보안, 다양한 에너지시스템의 연계 문제가 증가하고 있다"며 "때문에 AI 기술개발을 위한 충분한 데이터 확보나 그리드 안정성 유지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따라서 이해관계자간 공유데이터 및 사이버보안 기준을 표준화하고, 상호 운영가능한 솔루션을 개발·운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상학 본부장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스마트에너지·머신연구본부장은 "그동안 우리는 에너지의 생산에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IT를 활용한 효율화에 노력해왔다"며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게 AI"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탄소중립 과정에서 전력에 대한 무탄소화와 실시간성이 과제"라며 "AI는 기존 시스템으로 최적화할 수 있는 한계점 이상으로 갈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