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곧 윤곽 | ① 정부안 적용해보니
사전지정 지배사업자 많아야 5~6개 … 공정위 "최소화 방침"
해외 플랫폼은 구글과 애플, MS, 메타 등 거론
국내플랫폼 네이버 카카오 유력, 쿠팡은 빠진다
최소 매출규모 5조원 넘고 시장 지배해야 '지정'
"시장 장악한 공룡플랫폼 독점폐해 예방 법률"
공룡 플랫폼 기업의 독점폐해를 예방하기 위한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정부안이 이르면 내달쯤 공개된다. 그동안 논의된 정부안을 토대로 보면 사전 지정되는 지배적 사업자는 4~6곳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법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 제기한 '플랫폼 생태계 초토화' 등의 우려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오히려 지배적 사업자 수가 너무 적어 "규제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29일 정부 핵심관계자는 "플랫폼법 규제대상은 적어도 매출 5조원 이상의 대기업 규모에 국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장악력을 동시에 갖춘 극소수 공룡플랫폼에 그칠 것"이라면서 "법안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배적 사업자는 4~6곳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려는 기업은 매출액이 작은 나라의 국가 예산에 버금가는 글로벌 플랫폼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전규제 배경은 = 플랫폼법의 지배적 사업자 지정 규모가 극소수에 그치는 이유는 법안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플랫폼법은 규제대상을 먼저 지정하고 법률을 적용하는 사전지정 방식이다. 그만큼 조건을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불법유형도 4가지로 딱 정했다. 4가지 불법유형은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다. 이 4가지 행위는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기존 법률로 규제하려면 1~3년까지 걸린다.
하지만 플랫폼산업은 변화속도가 빠르고 한번 시장을 선점하면 신규업체의 시장진입이 매우 어렵다. 구글이나 카카오톡의 사례가 그렇다. 이 기간이면 해당 플랫폼산업의 생태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현행 법으론 제재 실효성도 없고, 소비자들은 공룡플랫폼 횡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법을 사전규제로 추진하는 배경이다.
◆양대 조건 갖춰야 지배사업자 = 규제대상 업체가 극소화된 또 다른 이유는 이 법의 제정취지다. 공정위 관계자는 "초대형플랫폼이 시장선점을 무기로 스타트업과 같은 신생업체의 시장진입을 막거나, 끼워팔기 등 편법으로 다른 시장을 흡수하는 반칙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글로벌 수준의 초대형플랫폼의 독점폐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란 설명이다. 정부 핵심관계자는 "비유를 하자면 플랫폼법은 수백년 앞선 문명의 외계인에 맞서 인류를 지키기 위한 법"이라고도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은 매출과 시장 점유율, 이용객 수 등 정량적 기준을 먼저 정한다. 이를 충족한 기업을 대상으로 '정성 평가'를 진행해 지배적 사업자를 최종 지정한다. 유럽연합(EU)이 시행 중인 디지털시장법(DMA)이 정량적 기준이나 정성적 기준을 초과하는 기업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플랫폼법은 2가지 기준을 모두 넘어서야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한다. EU는 둘 중 한가지 기준만 넘어서면(or) 지배사업자로 지정하고, 한국은 두 조건 모두 충족해야 하는(and) 셈이다.
매출규모 하한선은 국내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인 5조원이 유력하다. 시장점유율은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기업 지정기준(1개 회사가 50%, 복수 기업이 2/3 이상 점유)을 차용할 수 있다. 여기에 '정성평가 기준'도 넘어서야 한다. 규제 실익보다 소비자후생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등의 이유로 지배적 사업자에서 제외될 여지도 두겠다는 것이다.
◆국내플랫폼은 2곳만 지정될 듯 = 이런 정부안을 토대로 분석하면 플랫폼법상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기업은 많아야 최소 4곳, 최대 6곳 정도다.
EU는 지난해 DMA 도입을 준비하면서 특별규제를 받게 될 사업자로 애플, 메타, 알파벳(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와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 등 6개 회사의 22개 핵심 플랫폼을 확정한 바 있다.
하지만 EU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아마존이나 틱톡은 국내시장 장악력이 크지 않다. X(옛 트위터) 운영사인 메타 역시 국내에서는 지배적 사업자로 보기 힘들다. 따라서 해외 업체 가운데는 알파벳과 애플, MS 정도가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검색시장 등)와 카카오(SNS광고시장 등) 정도가 유력하다.
국내 플랫폼기업으로 유명한 배달의민족이나 야놀자 등은 당장 매출규모가 지정기준을 넘지 못한다. 배달의민족은 배달 플랫폼 시장 점유율이 65%를 차지하고 있지만 매출·자산 규모가 글로벌 수준에 못미친다. 배달의 민족 연매출은 2조원(2022년 연결 기준) 정도로 지배적 사업자 지정이 확실시 되는 네이버의 매출액(약 8조원)에 크게 못미친다. 두 회사의 자산총액도 각각 1조5000억원, 33조원으로 차이가 크다. 같은 이유로 숙박 플랫폼 시장에서도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하지 않을 전망이다.
온라인유통시장 1위 사업자인 쿠팡도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매출과 자산규모는 크지만 시장점유율이 '지배적 사업자'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온라인 유통시장의 20% 가량을 점유하고 있지만, 최근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신규 업체도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온라인 유통시장은 사실상 자유경쟁상태로 봐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결국 현재까지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큰 곳은 구글과 애플, MS, 네이버, 카카오 등 극소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법 어디까지 왔나 = 한편 공정위는 최근까지 플랫폼법 정부안에 담길 세부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막바지 협의를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쟁점은 지배적 기업을 결정하는 세부적인 절차 정도만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배적 기업을 정하는 의사 결정 과정을 어떤 부처가 주도하고, 다른 부처의 의견을 어느 정도까지 반영해야 하는지를 두고 막판 조율이 진행 중인 셈이다.
공정위는 플랫폼법을 둘러싼 과도한 불안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부처 간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부안의 상세 내용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일정대로 된다면 내달 중 플랫폼법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플랫폼법 정부안이 공개된다고 해서 지배적 사업자가 곧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후 하위 법령이 제정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법 시행까지는 1년 가까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지배적 사업자 지정 역시 법 시행 시점에 맞춰 이뤄지거나, 시행 이후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