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담대하지 못한 윤 대통령의 대담
새벽 출근길 택시를 탈 때마다 ‘용산 시대’를 실감한다. 국방부 서문으로 가달라고 하면 기사들이 곧잘 알아서 정치 얘기를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경북 영천 출신이라는 60대 후반의 기사는 “용감하고 당당하게 정치를 할 것 같아서 윤석열을 찍었는데 요즘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논란을 언급하며 “여사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을 향해서는 “와이프를 싸고돌기만 해 (표를) 다 깎아 먹는다”며 “한동훈(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없었으면 어쩔 거냐”고도 했다.
이틀 후인 2일, 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29%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한국갤럽,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30%대 붕괴’는 명품가방 논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긴 침묵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부정평가 이유도 눈에 띄었다. ‘소통 미흡’이 11%로 ‘경제/민생/물가(19%)’에 이어 2주 연속 2위였다. 올해 초까지는 5~6%대로 4위였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비상경제민생회의 10여 차례, 민생토론회 8차례를 생중계하는 등 ‘기자를 건너뛴’ 대국민 소통에 적극적이었다. 도어스테핑 중단, 기자회견 기피로 기자들과의 관계가 멀어지자 ‘깜짝 오찬’ 이벤트를, 부산엑스포 유치가 실패했을 때는 ‘깜짝 담화’를 했다. ‘신년기자회견’ 빼고는 다 해 본 듯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국민이 생각하는 소통과 거리가 멀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이쯤 되면 이제 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불편한 질문을 받아내는 ‘담대함’을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여전히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방송사와의 녹화대담을 7일쯤 방영할 것 같다는 비공식 입장만 들린다.
녹화는 4일 용산에서 이뤄졌다. 첩보작전마냥 이날 종일 방송사 차량 출입에 촉각을 세웠던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은 오후 5시가 다 돼서 이 사실을 공지받았다. 대통령이 참모진의 예상질문과 답변을 거절하는 호기를 보였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김 여사 문제는 4월 총선에서 ‘킬러문항’이 됐다. ‘배점’마저 너무 커져버렸다는 사실이 이번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다. 그저 뭉개고 넘겨선 다른 쉬운 문항으로 아무리 득점을 하려 해도 소용없다는 얘기다. 물론 윤 대통령이 ‘정답’을 내놔도 진영 안팎의 논란은 한동안 뜨거울 터다.
그러나 오는 4월 투표장에 나설 국민은 그가 어떤 자세로 이 문제에 임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의 직접 입장표명이나 기자회견 대신 녹화대담을 택한 윤 대통령의 모습을 담대하거나 당당하다고 여길 것 같진 않다.
이재걸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