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22년 합계출생률 0.7의 의미
‘2022년 국내 합계 출생률 0.78’이라는 발표가 난 후 지금까지 매체 종류를 막론하고 출생률에 대한 경고나 문제를 제기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뒤이은 2023년 가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우리나라 저출생 현상에 대해 우려한 내용을 시작으로, 최근 ‘한국소멸’을 염려한다는 전문가들의 입장까지 연이어 인용 보도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정부는 출생률만 높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쪽으로 급가속 중이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저출생의 원인은 아이 키울 엄두가 나지 않게 만든 현(혹은 전) 정부 탓이라며 정치판으로 이 문제를 몰아간다. 대책을 내놓는 쪽이나 이 틈을 타 권력을 흔들어 보겠다는 쪽 모두 나라 걱정에 한숨 쉬는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이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경고음
출생은 사람이 사회에 나타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이어가는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가능성이 있어야만 나의 다음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을 사는 현실이 고단하더라도, 내일이 좀 더 나을 거란 희망을 걸 수 있어야 사람을 키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기대가 통한 것은 20세기까지였을까?
2024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그 기대와 희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대체 무엇이 과거-현재-미래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 희망에서 멀어지게 했을까? 그 답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굳이 다음 사람더러 살아보라고 권할 만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힘들고 암담한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기를 바라지 않는 이치와도 같다.
대한민국의 내일에 사람이 살도록 하는 일, 출생률을 0.7, 0.8처럼 기록 다툼하듯 봐선 안된다.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그것도 주자를 바꿔가면서 상당히 오래 달려야 하는 긴 호흡의 정책, 즉 대한민국 백년대계의 틀에서 고민해야 한다. 경제 복지 노동 환경 문화 교육 의료 국방, 심지어 외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샅샅이 점검하여 사람답게 사는 데 미치지 못하는 게 있다면 바로 고칠 일이다. 미래와 연결된 불안과 위험, 위기요인이 줄어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백년대계의 틀에서 고민해야
출생률 0.7은 오천년 역사 이래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누군가의 임기 혹은 특정 제도만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그때그때 급조된 임시방편은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빚만 더 얹을 뿐이다. 제대로 된 해답을 찾자면, ‘내’가 이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치인, 정부의 손에서 해결될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일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나의 일상’에 대한민국을 들여놓고 아래 위, 좌우로 들여다보며 공적가치와 사적영역의 조화를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출생률 0.7의 의미는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이 ‘1’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출생률 0.7은 오늘의 우리가 대한민국의 내일에 대해 절망감을 느낀 결과이자, 더 이상 희망을 걸기 어렵다는 낭패감과 위기를 국민이 느끼고 있다는 신호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경고를 무시한 채 저마다의 이익 앞으로 폭주하는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잡아 멈춰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안심이 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여 희망이 보일 때에야, 이 땅에 ‘사람’이 계속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태정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