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양력과 음력, 그리고 절기
1895년 을미년 11월 18일부터 12월 31일은 우리 역사에 없어진 날이다. 고종은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하고 양력을 쓴다는 뜻의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선포함으로써 전격적으로 태양력이 도입되었으니 그 바람에 그 44일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달력은 사회적 약속이자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날짜를 나타낸 것이어서 지역과 시대에 맞게 정해지고 발달해왔다. 하루 24시간도 그냥 서로 간의 약속일 뿐이다. 고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12진법을 썼다. 1년을 12개월로 나눴고 특히 동양에서는 12지지(地支)가 24시간의 기반이 되었다. 1시간이 60분, 1분이 60초인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한 60진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쓰는 양력은 지구의 공전주기인 365.24일을 12달로 나누어 만든 것이고, 음력은 달의 공전주기인 29.5일을 한 달의 기준으로 삼아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음력 1년 12개월은 354.36일로 양력 12개월 365.24일보다 11.25일이 짧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 음력날짜는 태양의 움직임과 약 33일 차이가 나서 날짜와 계절이 맞지 않게 된다. 놔두게 되면 1월에 여름이 올 수도 있어 3년에 한 번씩 윤달 하나를 두어 양력과 날짜를 맞췄다.
양력의 장점은 날짜만 알면 계절을 알 수 있으나 윤년을 두는 방법이 복잡하고, 음력은 한달 날짜수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으나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음력에 계절을 읽을 수 있는 24절기를 가져다 붙인 것이 ‘태음태양력’이다.
자신의 이해에 맞춰 달력 날짜도 주물럭
우리가 사용하는 태음태양력은 해와 달을 함께 나타낸 가장 과학적인 역법이다. 양력 1월 1일은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음력 1월 1일은 달이 새로 생겨나고 새로운 기운이 드는 것을 나타낸다. 24절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라 음력이라 착각하지만 사실은 양력이다.
24절기는 3000년 전 주나라 때 태양의 운행에 의한 계절변화 패턴을 24개의 기준 절기로 나타낸 것이다. 입춘(立春, 봄이 왔음) 우수(雨水, 눈이 녹아 물이 됨), 경칩(驚蟄, 곤충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남)과 같이 계절의 변화모습을 반영한 이름들로 지어졌다. 또한 춘분(春分) 추분(秋分)은 각각 봄과 가을의 한 가운데이자 밤낮의 길이가 정확히 같은 날들이고, 하지(夏至)와 동지(冬至) 역시 여름과 겨울의 한 가운데지만 각각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거나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양력은 표면적으로 아주 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억지가 숨어있다. 기원전 46년 로마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당시의 1년 10개월이었던 달력 앞에 두개의 월을 추가하며 1년 12개월 ‘율리우스력’을 만들고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로 하고, 평년의 2월은 29일 윤년의 2월은 30일로 했다. 그러다 보니 1월이었던 마르티우스(Martius)가 3월(March)로, 6월을 의미하는 섹스틸리스(Sextilis)는 8월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셉템버(September), 악토버(October), 노멤버(November), 디셈버(December)의 어원은 7번째 8번째 9번째 10번째라는 뜻이지만 뒤로 밀리다보니 9월, 10월, 11월, 12월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7월이 자신의 탄생달임을 기념해 자신의 이름인 ‘율리우스(Ilulius,=July)’로 정했다.
다음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8월을 자신의 이름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꿨다. 또한 ‘율리우스의 달’ 7월이 홀수라 31일이지만 8월은 짝수라 30일 밖에 없자, 2월에서 하루를 빼 28일로 줄이고 8월을 31일로 만들고 9, 10, 11, 12월의 홀짝에 따른 30, 31일의 규칙은 뒤집어버렸다. 자기의 이익을 좇아 맘대로 바꾸는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천하를 얻는 방법은 민심을 얻는 것이거늘
고종은 일본의 조선침공을 염두에 둔 거시적 흑심을 모른 채 태양력 도입 권고를 받아들였으나 이는 수천년 이어온 전통을 무시했던 것이어서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이어서 나라까지 빼앗겼다. ‘천하를 얻는 방법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得天下有道, 得其民)’라는 고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초보 정치가가 전문가연 하며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我是他非)”만 외치며 민심을 얻으려는 행태는 우려를 자아낸다.
윤경용 페루 산마틴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