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혼합진료금지는 의료의 가치 문제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비중증 과잉 비급여’에 대한 혼합진료금지를 언급했다. 언론을 보면 ‘혼합진료금지’에 반대하거나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전문가 인터뷰가 있고, 일부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혼합진료를 대부분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선험적인 평가부터 난무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혼합진료’는 일본에서 유래된 용어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요양급여 범위와 그 범위 밖의 의료행위, 약제 등을 섞어 진료하는 걸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혼합진료 천국이다. 우리 시민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비급여진료가 당연하다고 느낀다. 거꾸로 건강보험 급여진료만 받는 경우나 비급여진료만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여진료와 비급여진료가 섞이게 된 것은 건강보험을 시작할 당시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급여범위가 매우 협소했기 때문이다. 급여 진료행위나 약제가 적다보니 어쩔 수 없이 비급여를 섞어서 진료하는 게 허용됐다. 문제는 건강보험 총재정이 100조원을 바라보고, 경상의료비가 200조원을 넘어가는데도 건강보험 하나로 진료가 안되는 혼합진료를 방치한 것이다.
급여완결적 진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혼합진료 금지가 상식인 일본의 경우를 보면 처음부터 비급여진료를 섞을 수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는 건강보험 진료는 평등하고 보편적인 공급을 위한 것이란 이념 때문이다. 일본 의사회의 핵심 강령이기도 하다. 빈부격차나 권력 여부에 상관없이 동일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일본건강보험의 목적임을 일본의사들은 알고 있었다.
둘째는 건강보험진료 영역은 일본의사들의 전문가적 자존심이었다. 의학적 필요가 있는 경우는 일본의사들이 재빨리 그 진료행위나 약제를 급여화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는 건강보험진료가 일본의사들이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들의 총합이고 자존심이 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혼합진료가 허용돼 의사들이 건강보험급여를 만드는 데 열심이지 않다. 환자가 돈만 더 내면 비급여진료를 제공할 수 있고 병원입장에선 초과이익도 거둘 수 있어 굳이 의학적 필요가 있는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병원의 상당수가 비급여로 수입을 충족해 급여보상체계나 기초는 빈약하게 방치됐다. 결국 주객이 전도되어 비급여는 한국의료의 골치덩이가 됐다.
때문에 단순히 혼합진료가 당장 좋은가 나쁜가 가능한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이제 급여완결적 진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보건의료의 대전제는 의료공급자와 수용자 사이의 정보불균형이다. 이 정보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환자의 대리인으로서 ‘주치의’가 필요하고 국가가 면허를 통해 의료인을 관리하고 약품과 의료행위를 허가한다. 즉 국가가 국민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약제와 의료행위를 엄선하는 셈이다. 정상국가에서는 보험진료를 선택하느냐, 비급여를 선택하느냐만으로도 명확한 기준점이 마련된다.
혼합진료금지로 환자 선택권 보장해야
그런데 이를 섞어서 공급할 수 있게 되면 어떤 환자도 효용성과 경제성을 평가해 선택할 수 없다. 때문에 일본처럼 혼합진료를 금지해야 환자들의 진정한 선택권이 발휘될 수 있다. 의사들은 환자 선택권 문제로 비급여진료를 옹호해선 안되며, 꼭 필요한 약제나 치료재료라면 그 과학적 근거로 급여화를 해 나가는 게 할 일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