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이토록 박절한 대통령
설 연휴를 앞두고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의 KBS 신년대담의 여운이 설 밥상머리로 이어졌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은 여론 형성의 ‘대목’인 만큼 설 전에는 정치권의 각종 이벤트가 몰리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대담이 가장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설에 만난 가족들은 오랜만에 국민들의 질문에 답한 윤 대통령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정치권 출입 기자의 의견을 물었다.
그중 연세가 든 가족 구성원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그는 윤 대통령이 방송에서 한시간 가량 각종 질문에 답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듯했다. 생방송이나 녹화방송이나 방송 보는 국민들에게 무슨 큰 차이가 나느냐고 반문했다. 녹화방송을 할 경우 정제된 답변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 않느냐는 반론도 제기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해명에 대해선 석연치 않아 하면서도 ‘남편이 부인의 허물을 덮어주려는 모습’이라며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 가족 중 한 명의 의견일 뿐이지만 윤 대통령 지지층은 아마도 이렇게 애를 쓰며 대통령 지지를 유지하고 있겠구나 느꼈다.
이렇게 윤 대통령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이 분도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어렵다”는 해명에 대해선 약간 갸웃하는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주로 윤 대통령의 호탕함, 추진력,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결단력을 높이 평가해 왔는데 부인의 명품백 의혹 관련해 갑자기 ‘박절하지 않은’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강조하는 데 혼란을 느낀 것 같았다.
이런 혼란은 비단 기자의 대통령 지지자 가족만 느낀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참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건은 오송참사와 이태원참사가 있었다. 윤 대통령은 이들 유가족들과 한번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지난해 10월 1주기 추모식을 하며 혹시 대통령이 오실까 싶어 의자까지 비워뒀지만 윤 대통령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안타까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전 대통령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의 기존 이미지와 격차 탓에 정치권에서도 ‘박절하지 못한 대통령’을 소재로 각종 논평이 며칠째 나온다. 대담 직후 더불어민주당과 새로운미래 기본소득당 진보당은 “사람을 박절하게 대하지 못한다면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도 박절한가”라며 날을 세웠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특활비를 70억원 썼다는 최근 보도에 대해서도 또다시 박절하지 못한 대통령이 인용됐다. 민주당은 “왜 (특활비에는) 박절하지 못했느냐”며 윤 대통령의 ‘선택적’ 박절을 질타했다.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