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틀어막은 입과 퀀텀점프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TV뉴스에서 그 영상을 보는 순간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인가 싶었다. 대한민국 최고 과학인재를 키워내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대통령에게 큰소리로 의견을 냈다가 입이 틀어막히고 짐짝처럼 치워진 졸업생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덩치 큰 경호원들이 가냘픈 졸업생 입을 틀어막는 순간 대통령은 “대한민국 과학기술 퀀텀점프”를 역설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퀀텀점프는 어떤 조건에서 일어날까? 대통령이 말한 퀀텀점프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퀀텀점프는 일반적인 수준이 아닌 큰 진보와 발전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퀀텀점프가 일어나는 조건은 자유로운 연구, 한계를 두지 않은 연구, 실패를 용납하는 연구가 끊임없이 이뤄질 때다. 윤석열정부가 연구개발(R&D) 혁신으로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던 바로 그 연구환경이다.
하지만 이날 졸업생이 끌려나간 모습은 ‘자유’ ‘한계 없는’ ‘실패용납’ 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 말씀할 때는 쥐 죽은 듯 있어야 하고 정부가 밝힌 정책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자유와 민주가 철저히 배제됐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더욱이 이날은 카이스트 졸업식에 대통령이 객으로 찾아간 날이다. 집에 손님으로 온 이가 말하는 중에 그 집 아들이 떠들었다고 손님 경호원들이 아들 입을 막고 끌고 나간 것과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여느 일반 손님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만큼 국민 모두가 존엄과 위엄을 지켜주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존엄과 위엄이 의견을 표시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행사의 주인인 졸업생을 그토록 무참하게 대접하는 것은 도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것이다.
대통령은 당시 연설중이어서 그 상황을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수많은 뉴스가 나왔기에 사후 보고를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조치가 나와야 한다. 20일 카이스트 동문과 재학생 26명은 이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경호처를 고발했다.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면서 반대의견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정책을 만든 근거와 기준이 반대하는 의견과 다를 수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목표한 성과를 내 제시한 정책의 당위성을 입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정책의 대상인 사람이 반대의견을 불편하게 냈다고 해서 폭압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끌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더욱이 끌려나간 사람은 바로 그 졸업식의 주인공이었다. 정부가 진심으로 과학기술 퀀텀점프를 원한다면 불편한 목소리도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먼저다.
고성수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