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입틀막’보다 무서운 것
3연속 ‘입틀막’이 나왔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장에서 강성희 국회의원이 경호원들에 의해 입이 틀어 막힌 채 사지가 들려 나갔다. 의료개혁 토론회장에 들어가려던 대한소아청소년과 의사회 회장은 경호원들에게 입이 막힌 채 끌려 나갔다.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제3의 입틀막 피해자가 됐다.
대통령을 향해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라거나 “생색내지 말고 R&D 예산 복원하라” 등의 ‘말’이 대통령 신변에 위협이 됐다는 설명이 붙었다. 모두 한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국민을 향해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난 22일 이 관계자는 “경호안전 확보와 질서 유지를 위해서 법과 규정 원칙에 따라 이뤄진 정당한 조치였다”고,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와 “경호 매뉴얼에 따라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한 신변보호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런데 내 안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상함’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입틀막’에 대한 놀람의 강도가 갈수록 현저하게 줄었다. 처음엔 불편하고 심란했지만 점점 ‘또 그랬구나’하고 말았다. 20개월간 가스라이팅 당한 느낌이다.
정권 초반에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욕설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자를 전용기에 태우지 않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주가조작 의혹, 해외순방 중 명품숍 출입 의혹을 받는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받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문서 위조죄로 실형을 살고 있고 정부는 김 여사 모녀가 보유하고 있는 땅 주변에 고속도로 진출입로를 놓으려 계획을 바꿨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한 법안 9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야당 반대에도 임명한 장관급이상 인사가 24명에 달했다. 모두 역대급이다.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몇몇 정관계 인사들이 사면심사 직전 상고를 포기해 형을 확정받아 사면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논란도 불거졌다. ‘입틀막’ 3회전은 그 이후 일어났다. 어느새 이상한 일이 그리 이상하지 않게 느끼는 상황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헌법이라도 주문처럼 되뇌어야 할까.
그러던 중 문득 영화 ‘부당거래’에서 나온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가 생각났다. 무기력한 결론이었다. 가해자는 생각지도 않는데 피해자만 끙끙대는 꼴이다.
박준규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