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알맹이 없는 ‘기업 밸류업 방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홍보해왔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방안이 공개됐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일본 증시와 같이 상승할 수 있을까 기대에 부풀었던 시장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당초 시장 참여자들은 26일 밸류업 프로그램 확정안이 발표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5월 중 2차 세미나를 개최한 후 6월에야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세제 지원방안은 추후 발표할 계획으로 구체적인 발표 시기와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선언적 발표부터 하면서 인위적인 증시 부양에 나선 모습이다. 총선을 의식한 행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당국이 1월 초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원래 없었다. 하지만 불과 한달 전인 지난달 17일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불쑥 등장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증권업계 CEO들과 간담회에서 △상장사의 주요 투자지표(PBR·ROE 등)를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공시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 권고 △기업가치 개선 우수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ETF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운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장에서는 저PBR주들이 급등세를 보였다. 이익 전망이나 할인율 변화 등 펀더멘탈 요인과 무관하게 상승세를 보이면서 구체화되지 않은 정책에 대한 낙관론이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문제는 지난 한달 간 잔뜩 뜸들이다 발표한 정부의 방안에는 이사회의 주주충실의무 등을 포함한 상법개정 로드맵이나 자사주 소각 관련 법인세 혜택,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의 구체적인 조치 등은 모두 빠졌다는 점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는 자율적으로 준비된 기업부터 참여하는 것으로 해 강제성 또한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배주주가 사적이익을 추구할 유인은 높은 반면 지배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소액주주 권리보호 수단, 이사회 기능 등이 취약하다. 만성적인 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자율성에 기댄 권고 형식으로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상법 개정 등 제도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과 증시 부양에 한계가 있다.
정부는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기업과 시장을 보다 제대로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 가이드라인 확정을 앞당기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의무공시화 등 주주환원정책에 대한 힘 있는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영숙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