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철도지하화, 도시발전 계기 되려면

2024-02-28 13:00:00 게재

철도는 도시발전의 촉매역할을 해왔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철로는 혐오시설로 여겨진다. 소음 경관 안전도 문제지만 길게 늘어진 철로가 공동체를 나누고 주변지역의 발전도 가로막기 때문이다. 급기야 법을 만들어 철도지하화 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철로주변 민원도 해소하고 쇠퇴한 도심지역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지역마다 이를 반기고 있다.

철도지하화 사업의 방법론은 정부가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대상지를 선정하되 소요재원은 민자로 조달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철도 상부공간 개발규제를 완화하고, 수익성 확보를 위해 부담금 감면 및 지자체의 재정지원도 제도화하고 있다. 이같은 방식은 투자유치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철도의 특성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간과한 부분도 있다.

쉽지 않은 공사, 녹록치 않은 민자유치, 복잡한 이해관계

첫째, 철도는 긴 선형시설이어서 일부구간을 끊어 지하화하기 어렵다. 지하화나 이전 대신 철도 상부공간에 행복주택이라는 이름의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구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근처주민들의 반대에다 소음·진동 방지를 위해서는 건축비가 꽤 많이 든다는 비난에 직면해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둘째, 민자유치가 만만치 않다. 20여년 전 추진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은 공공이 땅을 내놓고 민간은 자금조달과 개발을 맡았다. 그러나 개발범위 개발방식을 둘러싼 이권 갈등에 경기침체까지 엮여 무산됐다. 폭 좁고 긴 철로 상부공간에 큰 이익을 내는 사업을 구상하기 또한 만만치 않다.

셋째, 각 주체 간 갈등문제다. 개발사업이 이루어지는 현장마다 가치가 다른 주체들이 내건 플래카드를 보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철로주변 정비과정에 서 주민에 대한 보상과 처우, 상부공간의 토지이용 방안을 두고 지자체와 주민간의 입장차가 클 수 있다. 철로주변의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주민들도 외면할 수 없다.

원점에서 보면 철도지하화의 목표는 민자유치가 아니라 철도로 인해 쇠퇴된 도심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철로 주변뿐만 아니라 도시전체 거주민의 복리를 향상시키는 데 두는 게 맞다. 철도 또한 공공재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내포한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체적 점검, 정부지원 강화, 갈등해소 노력 필요

첫째, 종합계획을 수립한다니 관리주체별로 기술적 측면에서 도심을 통과하는 철도노선을 모두 점검해 지하화 가능성과 방법론을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하화 대신 상부공간 활용, 이설 등의 대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토목 및 도시설계분야 첨단 설계기법을 융합해볼 수 있는 기회다. 관련 연구기관 및 엔지니어링사들의 협력의 장도 열린 셈이다.

둘째, 철도지하화의 공공성을 감안하고 안정된 수익을 확보해 주려면 재정의 역할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민자유치가 성공할 수 있도록 개발사업에 특화된 공기업들도 역할에 맞게 민간사업자를 도와주고, 민간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 민간사업자들이 사업진행과정에 제기하는 규제완화 이슈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주는 역할은 정부의 몫이다.

셋째, 원만한 합의유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상지 선정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 사업추진이 도시계획 및 건축허가 권한을 가진 지자체에서 이루어지므로 지자체장은 사업추진을 둘러싼 갈등조정의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철도지하화를 둘러싸고 지역차원에서 합의에 의해 도시발전비전과 정비계획이 잘 제시되는 지역부터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철도는 도시성장에 기여했지만 도시안쪽의 철로는 도시발전에 장애가 되는 부분도 있다. 철도지하화는 비용이 들고 갈등조정이 쉽지 않겠지만 잘 설계하면 도시의 리모델링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철도지하화가 도시공간이 활력을 되찾고 도시경쟁력이 강화되는 모멘텀이 되길 바란다.

유병권 서울시립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