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기업 밸류업’ 정책의 성공조건

2024-03-04 13:00:01 게재

2월 말에 발표한 금융위원회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대해 주식시장은 상당히 실망했지만 필자는 정부가 주가부양 유혹에 영합해서는 안된다고 지난 칼럼에서 강조한 바 있다<2월 1일자 경제시평>. 금융위원회는 5월에 한차례 더 의견수렴을 한 후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보완책에 대한 적극적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밸류업에 대한 시각 전환, 주가부양에서 기업가치 제고로

우선 기업 밸류업에 대한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금융위원회가 1월에 기업 밸류업을 처음 제안했을 때는 주식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2월 말 발표에서는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위한 노력뿐 아니라 R&D 투자, 신사업 진출, 인적자본 투자 등 중장기적 기업가치 제고 계획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밸류업의 의미가 주가부양에서 기업의 실질가치 제고로 진일보한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발간한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에 따르면 미흡한 주주환원과 기업의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한국 주가의 저평가를 초래한 대표적인 요인으로 주가 저평가에 각각 37%, 36%의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해 정책선택이 바른 방향으로 전환한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산업전환기에는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 제고가 더 이상 기존사업의 연속선상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패권경쟁과 국가주의가 득세하는 가운데 4차산업혁명의 산업대전환이 전개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업들은 R&D 투자와 파괴적 혁신, 과감한 신사업 진출에 힘써야 하며 저수익 사업을 털어내고 새로운 고수익 사업으로 재편하는 사업고도화도 추진해야 한다. 한마디로 전환기의 기업 밸류업은 과감한 혁신과 선제적 사업재편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 밸류업에 대한 시각을 막연하게 산업전환기의 기업가치 제고로 특정할 때 정책의 핵심인 기업가치 제고를 기업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한 현 정책은 과연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책의 시대적 의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시장과 기술, 경쟁이 동시에 전면적으로 변하면서 국가 주도 기업육성이 보편화되는 상황에서는 기업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 정책이 실효성을 확보하고 시대적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산업정책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위원회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정책의 바른 방향을 찾아왔듯이 이제는 산업자원부에 요청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산업정책의 협력을 성사시켜야 한다. 이 경우 정책의 사일로 문화를 극복하는 새로운 시도로서 주목받을 것이며 코리아디스카운트 해결과 주식시장의 활력 회복을 달성하고 동시에 기업의 혁신역량 확충과 신사업 진출,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밸류업 정책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 내내 계속 확대발전하면서 윤석열정부의 시그니처 정책이 될 것이다. 산업부는 기업 밸류업을 위한 산업정책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

금융과 산업 정책협력으로 산업대전환 활로 열어야

현재 분야별 과제별로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는데 기업 밸류업에서는 각기 다른 조건에 처한 기업들의 밸류업 실현을 위한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며 문제해결형 민관협업의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규제개혁, 세제감면, 재정지원, 협력체제 구축 등 정책의 횡적 연계가 핵심이다.

주가총액이 기업의 순자산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PBR 기업의 주가부양에서 시작된 일본 모방의 기업 밸류업 정책이 정책협력을 통해 산업대전환 과제의 해결사로 변신하게 된다면 한국형 정책혁신의 모델로 거듭날 것이다. 금융위원장과 산업부장관의 만남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