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공정위 독립성, 기로에 서다
독과점 기업의 횡포와 짬짜미(담합)를 견제하는 유일한 정부조직이 공정거래위원회다. ‘기울어진 경제운동장’의 균형을 잡아 시장경제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일을 더 신속히 잘 처리하란 뜻에서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는 전속고발권을 줬다. 판사 역할을 하는 9명의 공정위원에겐 3년의 임기와 신분도 보장하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탄생한 공정위가 근래 들어 많이 이상하다. 1년 반 전에는 대통령이 ‘화물연대가 문제’라고 하자 ‘독립성이 보장된’ 공정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화물연대 조합원을 ‘사업자’로 볼 수 있는지 법원 판례가 명확하지 않을 때였다. 1심 법원장 역할을 해야 할 위원장이 앞장서 이 문제를 언급, 그는 결국 화물연대 검찰고발을 결정하는 전원회의에 불참해야 했다.
지난해 물가문제가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르자 ‘물가당국’이 되어 나섰다. 은행과 통신사 가릴 것 없이 줄줄이 담합조사에 착수했다. 대통령이 ‘킬러문항’을 언급하자 일타강사 등 사교육에 칼을 빼들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본연의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웬 오지랖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공정위원장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문제는 공정위원장이 독점사건을 조사하는 공정위원 회의체의 장, 즉 1심 재판장 역할을 겸한다는 점이다. 공정위 독립성이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윤석열정부 출범 뒤 공정위가 대기업 봐주기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가 겹치고 있다. ‘시장경제 자율’ 정책기조만 좇아 대기업 독점횡포를 눈감아주고 있다는 걱정이다.
최근 내일신문 조사에 따르면 공정위는 정부 출범 뒤 19건의 ‘지정자료 허위제출 사건’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단 1건만 검찰에 고발했다. 18건은 경고처분에 그쳤다. 검찰고발 비율은 5.3%다. 반면 문재인정부 때 다룬 사건을 집계하니 고발비율이 53.3%였다. 당시 공정위는 15건 중 과반인 8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가 변했다’는 비판에 할 말이 없는 통계다.
그래서 공정위원장은 재판부 역할에 충실하고, 사건조사는 사무처에 일임하라는 제안이 나온다. 향후 공정위의 조사와 심판기능 분리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공정위원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위원 추천권을 분산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현재는 9명의 공정위원 중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당연직이다. 3명의 상임위원은 공정위 출신이 맡고 4명은 외부출신의 비상임위원이다. 당연직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전원 공정거래위원장이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를 대통령과 국회, 중소기업과 소비자단체 등이 나눠서 추천해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위원회를 위해서라도 숙고할 만한 제언이다.
성홍식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