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기의 대한민국 출구 찾기
저출산 저성장 연금고갈 고물가 가계부채 부동산PF 등 연일 언론을 통해 우리 경제의 우울한 단면들에 관해 듣고 보게 된다. 10여년 전만 해도 미래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현실로 다가와 마치 곧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매일 우리의 귓전을 따갑게 때린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할 정치권은 이러한 위기들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듯하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둬서인가, 국가의 이익은 뒷전인 채 대다수 정치인들이 자신의 생존과 이익에만 골몰한다.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주변적 이슈들에 대한 단편적 대응책들만을 내놓는다. 대부분의 정책수단이 법률 개정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만 가동될 수 있는 상황에서, 윗선의 지시에 따라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각 부처들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대의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의사결정체계 하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치인은 국민이 선택한 대리인이지만 그 대리인이 반드시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은 좀 더 심각한 측면이 있다.
정치인들이 국가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질타하고 이들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에 수렴시켜야 할 기제는 합리적 판단능력을 가진 국민이다. 국민은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판단능력이 건재함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국가 발전의 지속과 위기 대응의 조건이다.
국민 집단지성 높일 갈등조정 인프라 필요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어느 한쪽에 서 다른 편을 손가락질 하는 지금 국내 정치상황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조건이 과연 우리사회에서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에 우려감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필요한 작업의 하나는 국민들이 가진 집단지성의 합리성을 높여 나갈 갈등조정의 인프라를 마련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프라가 갖춰야 하는 요체의 첫번째는 정파적 이익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 비판과 현실에서의 실현가능성 높은 대안 제시에 숙달된 독립적인 정책전문가집단의 양성이고, 두번째는 이들이 내는 정제된 의견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로부터의 신뢰 확보다.
참고로 국내에는 이미 수많은 공공과 민간 부문의 연구기관들이 존재하고, 이들 기관에 속한 많은 연구자들이 연간 수백편의 정책보고서들을 작성해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눈치를 보며 작성된 이들 보고서의 순수성을 온전히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즉 앞서 언급한 갈등조정의 인프라는 우리사회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온 우리나라지만 경제성장 속도에 뒤따르지 못한 정치・정책의 거버넌스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흠결이 우리 사회의 추가적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
정책실패 누적, 대안 제시할 주체의 부재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여러가지 위기 역시 경제성장 이면에 가려진 십수년간의 정책실패 누적에 대한 객관적 관점에서의 비판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 그리고 그러한 대안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정책추진체계의 부재에 따른 결과임을 주목해야 한다. 위기의 대한민국, 우리는 과연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가?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