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와 생물다양성
1500만 반려인구 표심 공략 또다시 시작됐다
‘빈 수레 정치’ 전락 안돼, 동물복지는 반려동물만의 문제 아냐
삶과 죽음, 갈림길 선 사육곰 문제도 여전히 해결 안되고 있어
‘동물권(animal rights)’이 또다시 화두다.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반짝’ 표심몰이에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종전에 비해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동물복지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생물다양성까지 챙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다각도로 살펴봤다.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를 앞두고 또다시 ‘동물권(animal rights)’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반려인구 1500만명 시대에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문제는 ‘반짝’ 관심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7일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2016년 총선에서도 많은 정당들이 동물권과 관련한 얘기들을 했지만 실제 집행이 된 건 드물었다”며 “총선 시기뿐만 아니라 평소에 국회의원들의 인식이 사회 변화를 잘 읽고 따라가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총선 공약이 빈 공약이라는 말을 해도 국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며 “국회의 도움으로 식용 개 종식 등 획기적인 사회 변화가 이뤄진 만큼 동물 정책에 대한 책임감 있고 적극적인 정치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권은 인권과 같이 동물의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단순히 인간이 이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하나의 ‘생명’으로 동물을 존중하자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 첫 포문, 국민의힘도 = 이번 총선 공약으로 동물권 관련 정책을 처음으로 꺼낸 건 더불어민주당이다.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은 ‘제22대 총선 동물복지공약’을 발표했다.
△민법 개정 동물복지기본법 제정 △동물학대 없는 대한민국 △강아지·고양이 생산 공장 및 가짜 동물보호소 금지 △유기동물보호센터의 동물복지 개선 △동물원의 동물복지 개선, 생물다양성 보전 기관으로서 역할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동물의 지위를 물건과 구분해 동물이 생명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민법’ 개정과 ‘동물복지기본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재산적 가치를 갖는 농장동물이라도 소유자가 권리와 함께 동물에게 최소한의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동물보호법이 지속적으로 개정됐지만 동물학대자의 사육 금지 처분 규정이 빠져 있고 피학대 동물에 대한 보호 방안이 미흡한 등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범죄는 증가하고 새로운 유형의 학대도 발생하고 있다”며 “동물 학대행위자로부터 ‘피학대 동물 몰수’ ‘동물사육금지명령’ 등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도 반려동물 관련 공약을 준비중이다. 8일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3월 중순쯤 공개할 공약집에 반려동물 관련 공약도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대선 때 발표한 공약과 같은 맥락일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공약집에서 △반려동물 표준수가제 도입 및 치료비 부담 경감 △반려동물 용품·미용·카페·훈련·장례 등 서비스산업 육성 △불법적 ‘강아지 공장’ 근절 등 반려동물 보호체계 정비 △개물림 등 안전사고 예방조치 강화 △반려동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쉼터 공간 확대 △동물 학대 예방 및 처벌 강화 △동물 보호교육 활성화 추진 등을 약속했다.
물론 각 정당이 동물 공약을 내놓고 강조하는 일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동물공약을 내놓기만 하면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철학과 내용이 부재한 ‘빈 수레 정치’에 더 이상 속을 국민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올해는 개식용을 금지하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의미 깊은 해다.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 해인 만큼 총선 이후에서도 종전과는 다른 행보를 기대하는 민심이 클 수밖에 없다.
◆보호시설, 일반 동물원 되면 안 돼 = 동물복지는 비단 반려동물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환경부는 2025년까지 곰 사육을 종식하기로 했다. 1980년대 농가소득 증대라는 목적으로 인간에게 웅담을 내어주기 위해 길러진 사육곰은 반달가슴곰(멸종위기종)이라고 해도 전혀 다른 취급을 받아왔다. 한국 ‘아종(생물분류체계에서 종(species) 아래에 있는 계급)’이 아닌 동남아·일본 등지에서 들여온, 다른 아종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한 논쟁 끝에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사육곰을 키우거나 도축하는 일을 금지하는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사육곰 종식법)’이 통과됐다. 이 역시 개식용 금지법과 함께 동물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례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남은 사육곰을 보호할 수 있도록 사육곰 보호시설을 구례군 서천군에 건립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육곰 보호시설에 곰을 이송하는 전 과정을 지원하며 보호시설을 세심하게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른바 ‘생추어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생추어리는 위급하거나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 있던 동물이나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역이다.
7일 최태규 수의사는 “시설 설계가 이뤄진 다음에 운영 주체가 정해져서 아쉬운 점이 있다”며 “어떻게 사육곰을 키울 것인지 운영 철학이 세워진 다음에 시설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 앞뒤가 바뀌지 않았나 싶지만 어쨌든 생추어리의 도입은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사는 곰들은 일반 동물원하고는 분명 다르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떤 관점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하면서 해당 시설들을 보여줄지 고민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또 동물원을 지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7일 환경부 관계자는 “시설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여러 정부 기관들과 협의를 하는 등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며 “사육곰 등 보호시설을 짓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사육곰 매입 예산 ‘0’, 해결 과제 산적= 게다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해묵은 과제도 남아 있다. 보호시설을 짓고 있지만 정작 농장주들로부터 사육곰을 이관 받을 방법이 문제다. 농장주들은 사육곰에 대한 합법적인 소유권이 있다. 농장주들이 사육곰을 그냥 포기하기는 힘든 상황이지만 정부 차원의 매입 예산은 없는 상황이다.
7일 환경부 관계자는 “이 문제는 2021년 민관 협의체에서도 주요 과제로 논의됐다”며 “당시 맺은 협약서에서는 ‘시민단체는 모금 후원 구조 활동 등을 통해 사육을 포기한 농가로부터 보호시설로 안전하게 이송돼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측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에서 개인이 소유한 사육곰을 매입하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그럴 능력이나 재원도 없다는 주장이다.
김아영 김형선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