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과학기술계 반복되는 충격과 교훈
정부는 올해 연구개발예산을 전년 대비 14.7%(약 4조6000억원) 삭감한 26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과학기술계에 큰 충격을 주면서 반발을 불러 왔다. 과거를 회고해 보면 과학기술계에 충격은 여러번 반복적으로 있었다. 새정부가 탄생하면 과거의 교훈과 학습은 사라지고 또 충격이 되풀이되곤 했다. 충격이 소모적인 혼란만 야기한다면 이는 현명하지 못하다. 정부와 과학기술계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소모적인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
역대 정부 과학기술계 연구개발예산 소모적인 삭감 반복
몇가지 사례들을 살펴보면, 전두환정부 초기에 정부출연연구소들을 물리적으로 통폐합해 과학기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예컨대 한국과학원(KAIS)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통합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 등이다. 하지만 충격에 비해 혼란만 야기한 측면이 많았다. 그후 KIST는 KAIST에서 다시 분리 독립됐다. 이러한 충격을 겪은 출연(연)들은 그 이후로 통폐합 등 물리적 구조조정에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김영삼정부 시절에는 사회경제적으로 정부출연연구소들의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작용해 소위 프로젝트 베이스 시스템(PBS) 제도를 도입해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의 인건비를 보장하지 않았다. PBS 제도의 장점도 있지만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발생했고, 그 이후 PBS 제도에 대한 보완책들이 마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진행됐다.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통합해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었고, 일부 정부출연연구소들을 대학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또 기초연구를 중시한다며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신설했으나 예산 추가소요 등으로 오히려 개별 대학교수들이 수행하고자 신청하는 기초연구과제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과학기술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이러한 충격들은 있었지만 정부의 연구개발예산은 삭감 없이 지속적으로 증대되어 왔다. 그 배경에는 여야를 떠나서 천연자원과 가용 가능한 토지가 적은 상황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력을 고도화하고, 연구개발을 통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인식이 기반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그동안 금단의 영역이었던 정부의 연구개발예산 대폭 삭감이라는 조치를 취했으니, 과학기술계로서는 그동안의 충격과는 질적·양적으로 다른 충격을 받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충격과 과학기술계의 반발을 이해했는지 발 빠르게 여러가지 보완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 내에 과학기술정보통신 수석비서관을 신설해 과학기술계와 소통을 강화하고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 3명의 차관들을 일괄적으로 교체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한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소들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에서 해제·제외시키는 등 정책을 교정하고 있다.
연구개발 효율성과 성과 높여 국민과 국가에 대한 책임 인정해야
이러한 상황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정부도 당연히 과학기술계에 되풀이되는 충격으로 인한 폐해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우리 과학기술계도 이제는 교훈을 가져야 한다.
정부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정부연구개발예산 비중을 볼 때 우리나라는 거의 5% 수준에 이르는 세계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이다. 이는 자랑스러운 점이지만 역설적으로 더 이상 정부연구개발예산이 과거와 같이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기는 어려운 포화수준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제 과학기술계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투입(input) 증대로부터 연구개발 과정(throughput)의 내부 효율성과 연구개발사업들 내 예산 배분 합리화를 추구해야 하며, 성과(output)를 높여서 국민과 국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지는 책무성(accountability)을 높여야 한다.
조현대 기술경영경제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