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중국이 직면한 ‘레닌함정’과 ‘제국과잉확장함정’
중국이 지난해 5.2%의 경제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통계의 신뢰도 문제와 함께 중국경제가 정점을 찍고 하강국면에 진입했다는 비관적 전망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중국경제 정점론(Peak China)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침체, 인구고령화, 수출부진 등의 경제적 측면을 넘어 정치 안보를 포괄하는 거시적 이해가 필요하다.
2010년대 중반까지 중국이 글로벌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하지만 코로나 종식 이후 중국경제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중국 피크론이 떠올랐다. 그 근저에는 중국이 직면한 두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마이클 베클리가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서 제기한 ‘레닌함정(Lenin`s Trap)’이다. 중국이 무역과 투자 등의 경제활동을 세계로 확대하는 정책이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영과 같은 한계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주권침탈까지는 도모하지 않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고갈로 인한 열강 간 갈등과 식민지의 반발에 직면했듯이 중국도 서방의 보호주의나 일대일로 국가 등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2020년에 쌍순환 전략을 채택했다. 대외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점증하는 상황에 대응해 내수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국내대순환 정책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가겠다는 전략이었다. 개방과 교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대순환 정책도 병행하지만 국내경제발전에 필요한 자원과 기술의 획득에 중점을 두는 부차적 전략으로 삼았다.
쌍순환 전략의 취지는 좋았으나 현실적으로 정치가 경제를 좌우하는 중국 공산당 체제의 특성으로 인해 국제대순환은 서구와의 전략경쟁으로 기술과 투자의 단절에 직면하고 있고 국내대순환은 성장의 핵심동력인 민간경제의 역할이 홀대되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방의 견제와 팽창주의 피해 현실화
둘째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제기한 ‘제국과잉확장(Imperial Overstretch)의 함정’도 있다. 구소련과 같이 제국의 확장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하면서 경제가 쇠퇴해 패망의 길을 걷게 되는 현상이 제국과잉확장이다. 떠오르는 신흥강대국은 경제의 발전과 기술의 촉진에 주력해야 하며 주변국과의 분쟁에 휩싸여 국력을 소진하거나 대외교역에 타격을 입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소련이 패망한 원인에 대한 경각심이 강하다. 중국이 개혁개방의 성공으로 경제력이 커지면서 자연히 군사력도 증강되었지만 군사비의 비율 자체만 보면 경제발전에 비례하는 정도의 증대에 머물렀고 구소련처럼 경제를 희생시킬 정도의 과도한 군사비 투입을 하지 않았다.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는 2021년 기준 중국의 국방비는 규모면에서는 미국에 이은 2위이지만 GDP 대비 비율은 1.7%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소련과 다른 형태의 제국과잉확장 현상을 보인다. 과거 ‘중화제국의 영토’ 수복을 군사력을 동원해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화평굴기 과정에서 수면 아래 잠재됐던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문제 등을 둘러싸고 서방 및 아시아 주변국가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국력이 무르익지 않는 상황에서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 되어 디커플링이나 공급망 다변화 등의 역풍을 맞았다.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는 ‘국가총력안보’의 구호 하에 국방의 영역이 정치 경제 사회 등으로 전방위 확장되는 점도 부담이다. 과학기술과 산업 육성에서 ‘군민융합’을 강조하면서 민생경제 영역이 위축되고 있다.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치안예산 또한 2010년부터 국방비 지출을 추월했으며 정부지출 평균보다 30% 이상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안보 강화를 위한 법 제도의 정비 또한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반간첩법 개정으로 기업인과 관광객의 중국방문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3월 양회에서 국가기밀보호법이 개정돼 위법행위의 범위가 확장됨으로써 외국과 경제교류는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국가운영 방식 전환에 대한 고뇌 엿보여
중국경제의 대외여건 악화를 뜻하는 레닌함정이나 군사력의 개념을 확장한 총력안보체제로 인해 국내경제가 위축되는 제국과잉확장의 함정은 문제를 진단하고 있음에도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는 점에서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는 위험’인 ‘회색코뿔소’라 하겠다.
중국이 이러한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공산당 일당독재 수호 우선의 국정운영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2022년 20차 당대회 이후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장기국가전략을 제시할 3중전회가 개최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중국의 국가운영방식 전환에 대한 고뇌가 엿보인다.
이창열 한국통일외교협회 부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