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비핵화 중간조치' 언급이 갖는 의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정책 목표라며 한미일 3각 공조를 통한 대북압박에 치중해온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에게서 ‘중간단계 조치(interim steps)’ 언급이 잇따라 나온다. 대북 전략 조정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정 박 미 국무부 대북고위관리는 이달 5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세미나에서 “비핵화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중간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조치에 ‘동결’이 포함되는 것이냐는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고, “중간조치를 최종단계로 예단하지 않겠다”고 해 한국 내 일각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동결’이나 ‘군축회담’에 대한 질문은 한사코 피했다.
하지만 하루 전 중앙일보-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 특별대담에서는 백악관 당국자가 보다 구체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미라 랩-후퍼 NSC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은 핵군축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도 “그러나 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중간조치(interim steps)를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특히 “현재 한반도 상황에 비춰봤을 때 ‘위협 감소’에 대해 북한과 논의할 준비가 돼있고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위협 감소’ 언급은 바이든정부가 ‘압박과 외교의 병행’ 기치 아래 북한이 지치기를 기다리며 상황을 관리하는 막연한 정책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한미일-북중러 간 ‘신냉전’ 구도가 짜인 탓에 북한이 중국·러시아를 뒷배로 경제적 고립을 버텨가며 핵·미사일 증강과 재래식 무력 확대에 나서자 이를 포괄적으로 ‘일단 멈춤’ 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미사일을 현 단계에서 동결하는 군비통제로 대북 전략의 무게를 이동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두 개의 전쟁에 대처하고 있는 미국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북한의 돌발 행동을 방지해야 하는 국내 정치적 수요도 있었음직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이후 30여년 간의 북핵문제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단조치’와 ‘위협감소’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선택지에 다름 아니다. 그간의 바이든정부 대북정책은 미국 조야에서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대선 전에 이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는 거꾸로 대선 이후 큰 방향 전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암시한다. 이 경우 ‘힘과 압박’에 치중한 우리 정부가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김상범 외교통일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