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외국인이 한국주식을 사는 이유
한국 증시가 오랜만에 선전하고 있다. 코스피는 연초 2500p 이하로 떨어진 이후 추세적인 오름세를 보이며 이제는 2700p선을 넘나들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상승은 오랜 만에 외국인 투자가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외국인투자자는 올해 들어 3월 중순까지 불과 두달 반 만에 코스피 시장에서 약 12조원 가까운 주식을 순매수했는데, 이는 작년 1년간 순매수와 비슷한 규모다. 이에 따라 코스피 시가총액 중 외국인 비중도 작년 말 32.7%에서 33.7%로 1%p 높아졌다.
코로나19 이후 증시 상승 국면마다 주로 개인투자자들의 역할이 컸었던 점, 그리고 작년 중에는 순매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증시 상승을 주도한다는 평가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외국인 투자가 빠르게 늘며 국내 증시 상승을 이끌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외국인 투자가 이끌며 선전하는 한국증시
첫째, 거시경제 환경 측면이다. 작년 말부터 수출증가율이 플러스로 반전되고 장기간 적자를 유지하던 무역수지도 흑자 기조로 돌아섰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많은 전망 기관은 비슷한 수출 주도 경제를 갖는 독일과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작년보다 0.8%p 정도 높게 예상하고 있다 . 반면 작년 중 호황을 보였던 미국 일본은 올해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고, 중국의 경우에도 미중 갈등과 부동산 거품 붕괴의 영향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기관들 입장에서 볼 때 지난 2년 간에 비해 우리 시장이 매력적으로 보일 법한 상황인 것이다.
둘째,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 측면이다. 외국인들은 이번 순매수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자산의 규모와 건전성, 그리고 이익창출 능력 대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업종과 종목에 집중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자동차 금융 업종의 대표 종목들에서 외국인 순매수가 주도하는 주가 급등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 투자자들의 경우 지난 2월 발표된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경우가 많았지만 외국인들은 이와 반대로 장기적 가치 제고 가능성에 점수를 높게 준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부 안은 발표되지 않았고, 만약 허술한 대책과 기업들의 보여주기식 대응이 맞물린다면 밸류업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실망감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처럼 지속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개선해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고, 외국인들은 큰 폭의 가치 상승이 나타난 일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증시의 가치 역시 한단계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셋째,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와 엔화 약세 기조의 마무리에 대한 대응 관점이다. 일본은 긴축완화를 고민하는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초저금리와 중앙은행의 자산매입정책을 언제 멈춰야 할 것인가를 고민중이다. 물가상승 압력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임금인상 행렬은 정책 변화 필요성을 더 높이고 있다. 그런데 완화정책을 멈추면 지금까지 일본 주요 제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했던 엔화 약세 역시 되돌려지고 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급격한 외국인 자금 유입과 주가상승으로 우리 증시와 일본 증시의 가치 차이가 벌어져 있다.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우 비싼 것을 팔고 싼 것을 사는 포트폴리오 조정의 관점에서 우리 증시를 사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불확실성 있지만 상반기까지 외국인 순매수 유지 전망
물론 모든 전망은 항상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재 총선과 부동산PF,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불확실성이 더 커져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이유들을 고려할 때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주식 순매수 기조가 유지되고 이들이 관심을 갖는 업종과 종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주가상승률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석원 SK증권 경영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