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다중위기의 해결사 흙을 다시 보자
지난 11일은 ‘흙의 날’이었다.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5년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우리나라에서 3월 11일이 흙의 날이 된 것은 3월에 농사가 시작되고 석 삼(三)자가 농업 농촌 농민의 삼농을 뜻하고 11은 십(十)과 일(一)을 합치면 흙토(土)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 토양의 날’은 12월 5일인데 세계토양학회가 토양보전에 열성적이었던 태국의 푸미폰 국왕의 생일인 이날을 기념하자고 제안해 유엔이 2014년부터 지정했다.
영미권에서 흙은 흔히 dirt로 쓴다. 더러운 먼지와 같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흙은 그렇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하찮아 보이지만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건강한 토양 1g당 1억~100억 개체수의 미생물이 존재하고 이런 건강한 흙 1㎝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200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우리는 마구 파헤치거나 버려두고 아스팔트로 덮어버린다. 흙의 날을 정해 그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하는 이유다.
흙을 가장 요긴하게 자원으로 활용하는 분야는 농업이지만 산업혁명 이후 흙을 단순한 먼지 알갱이처럼 여겨왔다. 모자라는 영양분은 화학비료를 넣어 보충하고 토양이 딱딱해지면 트랙터로 마구 갈고 심지어 양액재배를 통해 관리하기 어려운 흙을 없애기도 했다.
식량문제 해법 농생태학에서 찾기
이와 달리 토양의 건강성을 바탕에 두고 농업을 생태학적 관점으로 농업을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농생태학이다. 농생태학이란 말은 1928년 러시아 농학자 바실 벤신이 처음 사용했지만 오랫동안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연구되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 작물생태학에서 시작해 농업생태학으로 개념을 넓히면서 1990년대 스티븐 글리스만이라는 캘리포니아대학 환경학과 교수의 연구에 기반해 학회가 만들어지면서 학문적 기반을 갖추게 된다.
2000년대 들어 농생태학은 농업에 생태학적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것은 종자생산, 화학비료, 살충제의 제조, 농산물의 유통과 가공 등 농산업 전반에 걸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먹거리 전체 체계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농업과 인간사회의 관계에 주목한 농생태학을 지지하는 농민과 시민활동가가 생기면서 농생태학은 학문 분야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업과 관련한 실천활동과 사회운동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농생태학을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거리체계의 구축 및 관리에 생태적 원칙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적용하는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접근방식이라 정의한다. 또 2014년부터 국제심포지엄을 열면서 지구적 식량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농생태학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운동으로서 농생태학을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킨 사람은 인도의 반다나 시바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핵물리학을 공부하고 인도로 돌아온 후 1984년 보팔의 유니언 카바이드의 가스노출 사고 이후 히말라야 산림보호, 종자 다양성 회복, 유전자 조작 농산물 반대, 여성농업인 권리신장 등의 사회운동에 앞장선 세계적인 인물이다. 반다나 시바는 농업이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산업 패러다임에서 상호 연결성과 다양성에 기초한 소농 중심의 생태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지구의 안녕과 사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며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바로 ‘농생태학’이라 했다. 또한 “우리가 흙에 하는 일은 곧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 부식토를 뜻하는 ‘hummus’와 ‘human’의 어원이 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기후위기 막을 해법도 흙에 있어
최근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도 토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 흙에는 대기가 포함하고 있는 탄소량의 3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150년간 흙에서 배출한 탄소량은 그 이전에 배출된 탄소량의 40% 정도라 흙은 아직도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격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프랑스는 매년 토양 속 유기물질 함량을 0.4%씩 늘려 토양에 탄소를 격리하고 토양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4퍼밀운동(4per mile initiative)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안전한 식량을 확보하면서 기후위기도 동시에 해결할 방법이 흙에 있다. 흙의 날을 지내며 미래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우리 땅과 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임경수 퍼머컬처 전문가 로컬플랫폼 브랜드쿡 C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