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고향사랑기부, 재난구호에 최적화
지난해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일부 지자체들이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해 피해 주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당시 제도로는 실행이 불가능했다. 피해가 큰 지역에 기부금을 낼 수는 있지만 해당 지자체가 이 돈을 곧바로 집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를 목적으로 한 지정기부 제도도 도입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국회가 지난해 말 고향사랑기부제에 지정기부 도입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줬다. 또한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전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에서 정부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민간플랫폼 도입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단 제도적 제약은 모두 해소된 셈이다.
지금의 재해구호 체계는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속도가 빠르지 않다. 개인이나 기업이 모금권한을 가진 단체를 통해 기부한 돈이나 물품이 피해 주민에게 전달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재해구호협회에 여전히 1000억원이 넘는 의연금과 기부성금이 쌓여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들이 낸 기부금이 목적한 곳에 정확히 사용되는지도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코로나사태 때 걷은 돈이 다른 사회재난에 사용되기도 하고, 태풍 때 걷은 돈이 지진 피해에 사용되기도 한다. 미리 기금을 비축해 뒀다가 필요한 곳에 쓰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생기는 문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이 같은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면서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직접 기부를 받을 수 있게 됐고, 연말에는 지정기부 제도도 법제화됐다. 예를 들어 국민들이 최근 화재로 생계 터전을 잃은 충남 서천 재래시장 상인들을 위해 서천군에 기부를 하면 서천군은 이 돈을 곧바로 상인 지원에 쓸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 유사한 고향납세 제도가 각종 재난에 대한 구호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20년 기록적인 폭우로 재해를 입은 구마모토현 히토요시시에서는 재해발생 2시간 후 고향납세를 통한 재해지원 창구가 개설됐고, 3일 만에 3000만엔(약 2억7000만원)의 모금액과 응원 메시지가 피해 주민들에게 전달됐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재해를 입은 지자체의 업무경감을 위해 주변 지자체가 대신 기부금 접수를 받아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한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아있다. 현재 법인이나 단체가 고향사랑기부에 참여할 수 없다. 재해구호의 경우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규모 있는 참여도 필요하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재해구호의 핵심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서둘러 관련 규정을 손볼 필요가 있다. 관련 규정을 모두 총괄하고 있는 행정안전부가 보다 신속하게 제도개선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김신일 자치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