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활 균형 출산율 제고
구조개혁 없는 저출산 지속, 2050년 역성장 확률 68%
근로자 절반 유연근무제 희망, 활용률은 15.6%에 그쳐 … “출산율을 올리려면 육아휴직사용률·청년고용률을 높여야”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다. 올해는 0.6명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출산율이다.
구조개혁 없이 현재와 같은 초저출산 흐름이 이어질 경우 한국 경제가 2050년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확률이 68%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출산·결혼 환경, 유연근무제 확산에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황인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연구실장은 18일 고용노동부 주최 ‘일·생활 균형 정책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은 그 수준과 지속기간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고 구조개혁 없이 현재의 초저출산 흐름이 이어진다면 성장과 분배의 양면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등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소, 일·생활 균형 등 고용노동정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성장 측면에서 한국경제가 2050년대에 0% 이하 추세성장률, 즉 역성장을 나타낼 가능성이 68%라고 분석했다. 분배 측면에서는 소득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타일지수가 2021년 0.25에서 2050년대 0.3으로 약 18% 올라 불평등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 2012년 9월 대기업 최초로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한 롯데그룹은 별도의 신청절차나 상사의 결재없이 출산휴가 후 1년 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2017년부터는 그 기간을 2년까지 연장했다. 배우자 출산 시 남성 직원에게 최소 1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부여하는 ‘남성육아휴직 의무화제도’와 초등학교 입학 자녀 양육 시에는 최대 1년 간 ‘자녀돌봄 입학 휴직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 웹툰 콘텐츠 전문기업인 재담미디어는 오전 8시부터 11시 사이에 자율 출근하고 7.5시간 근무 후 퇴근하는 ‘시차 출퇴근제’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 오후 1시부터 오후 3시까지를 ‘집중 근무시간’으로 지정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기 위해 ‘연장근무 사전 승인제’를 시행 중이고 초과근로에는 근무결과 보고서 작성 및 별도 휴무일 지정 등을 하고 있다.
#. 남성 직원 비중이 80% 이상, 근로자의 42%가 ‘워킹대디’로 ‘부성보호제도’를 실시하는 모션은 2022년 7월부터 출산휴가 뒤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직원이 희망할 경우에는 육아휴직 법정 기준인 1년보다 더 길게 사용할 수 있다. 대체인력 채용으로 휴직자와 동료부담을 완화하고 대체인력 채용 어려울 경우 동료 근로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배우자 태아 검진뿐만 아니라 자녀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연차휴가와 별개로 유급휴가를 부여한다.
◆유연근무 “출산률 제고에 강력한 도구” =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근로조건뿐만 아니라 결혼·출산 환경에도 격차를 보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는 2004년 1.5배에서 2022년 1.9배로 커졌다. 2022년 기업규모별 출생년도 육아휴직 사용률을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은 79.2%, 50~299명 기업은 80.2%, 5~49명 기업은 62.6%에 달했다. 반면 4명 이하 소기업은 32.7%로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았다.
2022년 9월 전국 25~39세 미혼자 10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장래에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의 비중이 취업자는 49.4%, 공공기관·공무원은 58.7%인 반면 비취업자는 38.4%, 비정규직은 36.6%로 낮았다.
황 연구실장은 “출산율을 높이려면 육아휴직 사용률과 청년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황 연구실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을 분석한 결과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간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은 10.3주로 한국을 제외한 34개국 평균(61.4주)의 1/6 수준에 그쳤다. 육아휴직 기간을 OECD 평균만큼 늘리면 출산율이 0.096명 높아졌다. 또 한국 청년층(15~39세) 고용률이 58.0%인데 OECD 34개국 평균(66.6%)까지 높이면 출산율이 0.119명 올릴 수 있다. 즉 청년층 고용률과 육아휴직 실이용시간이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되면 출산율을 약 0.22명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유연근무제 확산에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손 연구위원은 “유연근무를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인은 대기업·정규직 근로자에 국한돼 있고 2차 노동시장 근로자에게는 유연한 근로방식 선택권이 대단히 제한돼 있다”며 “더 많은 육아활동이 기대되는 여성의 유연근로제 활용 비율은 오히려 남성보다 낮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연근무제 활용률은 남성 17.1%, 여성 13.9%였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에 따르면 유연근무제 활용률은 2016년 4.2%에서 코로나19 이후 2021년 16.8%까지 증가했으나 다시 감소해 지난해 15.6%로 줄었다. 반면 지난해 기준 유연근무제 희망 수요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47.0%에 달했다. 그 비율은 2018년 38.0%에서 해마다 증가 추세다.
손 연구위원은 “장시간 근로, 경직적 근로관행을 벗어나 일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유연근무제는 일·생활 균형, 노동자의 웰빙, 성평등, 출산율 제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롯데, 가족친화 정책으로 출생률 높여 = 실제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롯데그룹은 일·가정 양립 정책으로 출산율이 올랐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롯데그룹 26개 계열사에 대한 출산율은 2.05명이었다.
조옥근 롯데지주 인재전략팀 수석은 “롯데그룹 26개 계열사의 2017~2022년 가족친화 정책과 출생률을 연계 분석한 결과, 가족친화정책이 활발히 시행한 상위 30% 그룹사의 출생률은 0.07명 증가한 반면 하위 그룹사는 1.14명 감소했다”고 말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기 어렵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로 ‘인사 불이익 우려’를 꼽았다.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은 6일 ‘남성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 격차와 차별’ 보고서에서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성 노동자 1720명을 대상 설문조사(1월 16일~2월 2일)에 따르면 응답자의 71.0%는 ‘다니는 회사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육아휴직 신청을 하는 데 눈치가 보이거나, 아예 신청이 어렵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중은 2016년 8.7%에서 2022년 28.9%까지 빠르게 늘었다가 2023년 28.0%로 오히려 조금 줄었다.
‘남성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은 이유’로 ‘인사고과 승진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우려’(85.1%·복수응답)를 가장 많이 꼽았다.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한 우선 과제(복수 응답)로는 ‘남녀가 함께 육아를 분담하는 사업장 구성원의 인식 변화’(71.2%), ‘승진·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과 차별 금지’(70.5%), ‘임금삭감 없는 육아휴직 급여 지급’(67.4%) 등을 꼽았다.
민주노동연구원은 “육아휴직 사용 격차는 부모 삶의 질만이 아니라 자녀들의 삶의 질 격차로 이어지고 저출생, 사회 불평등과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단축, 양질의 돌봄서비스 전제 = 손 연구위원은 “유연근무 활성화를 위해선 업무과정에 대한 통제보다는 업무결과를 강조하는 직장문화 구축이 필수적이며 조직 내 신뢰구축이 전제돼야 도입과 유지가 가능하다”며 “유연근무제가 전통적 성역할을 강화하는 매개체가 되지 않도록 양성 평등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반적인 근로시간 단축과 양질의 촘촘한 돌봄서비스 제공이 전제돼야 하며 근로자 스스로가 노동시간과 강도를 늘리는 ‘유연성의 역설’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유연근무제가 근무방식의 표준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6+6 부모육아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녀 출산 18개월 이내에 부모가 동시 또는 차례대로 육아휴직을 쓰면 첫 6개월간 각각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까지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기존에 첫 3개월만 통상임금의 100%를 지원하는 3+3 부모 육아휴직제를 확대한 것이다. 또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지원 수준 및 기간 확대 등 육아지원 제도가 근로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을 확대·개선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저출생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회복하는 고용노동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의 사고방식과 틀에 갇힌 관성적인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모든 것을 원점에서 고민해 정책을 재설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