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비례후보 선출 민주적 절차 없애더니

2024-03-22 13:00:31 게재

‘밀실공천’ 논란 확산, 비례제도 불신 커졌다

“거대양당, 정당 지도부 의해 사실상 당선자 결정”

계파·정파 나눠먹기 … “정당간 경쟁없이 당선, 문제”

거대양당 뿐만 아니라 소수정당의 비례대표후보 선출과정이 많은 논란 속에 마무리됐다. 불투명한 밀실공천이라는 평가로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분’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들을 비례대표 후보군에 넣거나 당선 가능한 번호 안에 배정하기 위한 물밑 거래가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4년전에 만든 비례대표 후보의 민주적 절차를 담은 규정을 거대양당이 지난해 없애면서 ‘제도적 장치’도 사라진 상태다.

비례대표 순번 발표하는 국민의미래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유일준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18일 당사에서 비례대표 후보자 순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22일 제3지대 정당의 모 고위관계자는 “비례대표 후보를 뽑는 기준이나 방식이 민주적이지 않다”면서 “법에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기로 돼 있지만 잘 지켜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거대양당의 경우나 소수정당이나 유권자들에게 평가받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당대표 등 일부 지도부에 의해 사실상 당선자가 결정되는 셈”이라며 “비례대표 선출 과정의 밀실 불투명성 때문에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거대양당의 비민주적 절차 = 비례공천 파동이 가장 컸던 곳은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도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 작성에 친윤석열계인 이철규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 위원장이 밝힌 비례후보 선출과정은 몇몇 지도부에 의해 결정됐고 불투명했다. 그는 “비례대표 공천은 그 진행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비례후보 추천) 그 과정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의견이 맞지 않는 것이 있었다”며 “비대위원장께서 반대하는 분들은 다 제외하기로 동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협의없이 독단적으로 이뤄지면 어떻게 함께 하겠느냐는 뜻을 (한 비대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도 했다. 친윤계와 친한계(친한동훈계)라는 국민의힘 양대 세력간에 비례후보를 두고 일종의 거래와 협상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민주당 역시 ‘민주적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 4선 우상호 의원은 이달 4일 페이스북을 통해 “4년 전 비례대표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사람으로서 지적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4년 전에는 당원이 참여하는 공천을 추진한다는 취지로 비례대표 신청자들의 예비 경선을 전당원 투표로 하고, 그 순위 확정은 중앙위원들 투표로 결정했다”며 “이번에는 전당원 투표와 중앙위원 투표를 하지 않고, 전략공관위의 심사로 결정한다고 한다. 이 방식은 밀실에서 소수가 후보를 결정하는 과거의 방식으로, 혁신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원들의 권리를 확장한다는 목표를 세운 이번 지도부가 왜 이런 자의성이 개입될 방식을 결정했는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고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제3지대의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역시 공관위에 사실상 공천권이 넘어갔다. 개혁신당의 비례후보 10명 선정과 순번 결정에 김종인 공관위원장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우리가 연합정당이고 여러 세력의 각자 입장이 있어서 조정하기 어렵고, 다소 의견 불일치가 있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김종인 공관위원장 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새로운미래 관계자는 “공모와 오디션을 봤는데 장애인 등의 가점 기준 등이 만들어지면서 지도부가 의도를 갖고 진행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했다. 전당원 투표로 이뤄진 곳은 녹색정의당, 조국혁신당 정도다.

◆호떡 뒤집기 = 국민의힘은 ‘사천’ ‘밀실공천’ 논란이 확산되자 비례대표 순서를 조정하기도 했다. 호남 4선의 조배숙 전 의원이 당선권인 13번을 받았고 비례의원이면서 비대위원인 김예지 의원은 또다시 당선권인 비례후보 순번 ‘15번’을 차지했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들어간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역시 당선권에 들어감에 따라 2연속 비례의원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비판의 도마위에 올랐다. 비례후보 추천이 불투명하게 진행되거나 정파간 나눠먹기 형식으로 전락함에 따라 원칙없이 배정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비례대표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 공천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이정진 박사)를 통해 “정당명부제로 실시되는 비례대표선거에서 국회의원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민주성이나 공정성,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며 “비례대표선거의 경우 공천심사위원회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당원이나 유권자의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가 부족하고 주로 중앙당에서 후보자 추천과 선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21대 총선 직전인 2019년 12월 27일 거대양당은 ‘독일식 비례대표 선정 규정’을 참고해 ‘민주적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제도화됐다. 정당법에 ‘정당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거쳐야 하고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후보자 추천절차의 구체적인 사항을 당헌‧당규 및 그 밖의 내부규약 등으로 정’하도록 했다. 또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후보자 추천절차의 구체적인 사항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서면으로 제출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별로 후보자 추천절차의 제출여부와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했다. ‘후보자등록을 하는 때에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의 후보자 추천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 등 후보자가 추천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후보자명부에 첨부해야 한다’며 ‘관련 서류를 갖추지 아니한 후보자등록신청을 수리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각 정당의 ‘비민주적 후보 선정’이 문제되면서 지난해말에 정당법에 새롭게 들어간 비례대표국회의원 후보자 추천 규정은 ‘정당은 당헌·당규 등에서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한다’는 내용을 넣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문가 등 지역구 선거를 통해 들어오기 어려운 인사들을 영입할 목적으로 만든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가 사라지고 당내 계파간 나눠먹기 등으로 원칙 없는 비례 공천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비례대표들이 지역구와 달리 다른 당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민주적으로 잘 뽑아야 할 유인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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