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국민’은 그냥 재활용품일 뿐인가
‘돈봉투 사건’의 정우택 후보, ‘난교 발언’의 장예찬 후보, ‘5.18 폄훼’ 발언의 도태우 후보에 대해 국민의힘은 과감하게 ‘공천 취소’ 결단을 내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들을 향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말을 한 사람들”이라며 “(유권자) 여러분 눈높이만 봤다”고 했다.
‘목발 경품’ 발언과 거짓해명으로 논란을 빚은 정봉주 후보에 대한 공천취소, 아동 성범죄 사건 변호 논란의 조수진 변호사의 후보 사퇴 사유도 ‘국민들의 눈높이와의 괴리’였다.
거대정당은 이들의 해명과 사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읍참마속’을 단행했다. 공천의 눈높이를 ‘국민’에 맞추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한 위원장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국민 목소리를 반영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본격적인 공식선거운동에 돌입한 이후엔 태도가 달라졌다. 공천취소와 후보사퇴의 주요인이었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뼈를 깎는 심정’과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은 온데간데 없다.
갭투자 의혹과 허위 재산 신고 등으로 논란을 빚은 민주당 세종갑 이영선 후보를 공천취소할 때만 해도 민주당의 추상같은 ‘국민의 눈높이’ 잣대가 작동하는 듯 했다.
하지만 ‘자녀를 이용한 편법 대출’ 의혹의 양문석 후보, ‘꼼수 증여’ 의혹의 공영운 후보, ‘성 인식 논란’을 빚는 최민희 후보 등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단독 과반’을 자신하는 민주당은 더 이상의 조치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한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 후보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서도 “많은 자산계층에서는 이러한 형태가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두둔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장진영 후보뿐만 아니라 이준배 후보 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돼 있고 이현웅 정필재 김혜란 조수연 김상욱 구자룡 유영하 후보 등은 성범죄 가해자 변론과 관련한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말이 없다. 조국혁신당의 조 국 대표는 남편의 다단계 사기 변호에 따른 거액 수임료로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인 박은정 후보와 관련해 “전관예우가 아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거대양당은 상대방 후보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면서 ‘국민의 눈높이’ 잣대는 뒤로 미뤄 놨다. 선거까지 열흘도 남지 않았고 상대방의 문제만 들추면 선택지가 없는 유권자가 어쩌겠냐는 심사로 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갖다 썼다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것쯤으로 ‘국민’을 치부해왔던 21대 국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국민’은 언제까지 썼다 버리는 재활용품 정도로만 취급받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