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심판주기’… 멀어지는 ‘국가비전’
증오정치 극심 ‘핍박→복수→핍박→복수’ 주기 짧아져
DJ·노 10년→MB·박 9년→문 5년→윤석열 2년 ‘심판론’
중장기 국가비전과 시급한 사회문제 논의 ‘뒷전’으로
증오와 대립 정치가 극심해지면서 우리 편을 핍박한 상대 진영을 겨냥한 ‘복수(심판)’가 거침이 없고 그 주기도 짧아지는 모습이다. ‘핍박→복수→핍박→복수’로 되풀이되는 ‘복수 시계’가 갈수록 빨라진다는 것이다. 여야가 ‘복수(심판)’에만 매달리다보니 국가 비전과 사회문제를 놓고 해답을 찾아야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1일 한국갤럽(3월 26~28일 조사,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정부 견제 위해 야당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49%)는 응답이 ‘정부 지원 위해 여당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40%)를 앞섰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 2년도 안된 시점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정부 심판론’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것. 윤석열정부로부터 핍박 받는 모양새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 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분노한 야권지지층의 지지를 업고 ‘복수(심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과거 ‘복수 시계’는 이렇게까지 빠르지는 않았다. 김대중·노무현정부는 10년의 국정 기회를 얻었다. 국민 입장에서는 충분한 국정 기회를 준 것. 이명박·박근혜정부도 국민으로부터 10년의 임기를 부여받았지만, 탄핵으로 임기가 1년 단축됐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야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핍박했다가 탄핵과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라는 앙갚음을 당한 셈이다.
문재인정부 시절에는 보수세력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핍박받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윤 총장은 보수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일약 제1야당 대선후보가 됐고 ‘문재인 심판론’을 앞세워 5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보수층과 윤 총장이 ‘복수(심판) 주기’를 5년으로 앞당긴 것이다.
이번에는 윤석열정부로부터 핍박 받는 것으로 비쳐진 이 대표와 조 대표가 ‘복수(심판) 주기’를 2년으로 더 단축시켰다는 분석이다. 윤석열정부가 지난 2년 동안 ‘국정 실패’로 심판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극심해진 증오정치가 ‘복수(심판) 주기’를 갈수록 단축시킨다는 지적이다. 결국 증오와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복수(심판) 주기’가 10년→9년→5년→2년으로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복수 시계’가 빨라지면서 정치 본연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우려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1일 “권력이 정적을 핍박하고, 핍박 받은 정적이 강성지지층을 앞세워 복수에 나서는 복수 정치가 되풀이 되고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며 “중장기적인 국가 비전과 시급한 민생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