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인구감소 위기, 돌파구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화법이 직설적이었다. 신문사 경제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와 몇차례 식사를 함께 하면서 거침없는 화법에 놀랐던 기억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저출생 대책 시행에 회의감을 토로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효과가 의심스러운 데도 언론의 여론몰이 때문에 마지못해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출산지원대책이 그렇다. 사람들이 ‘세상 참 살기 좋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아이를 많이 낳아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질 것이다. 팍팍한 세상을 그대로 둔 채 출산 지원에 재정을 풀어봤자 국고를 허비할 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국정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그다운 얘기였지만 두고두고 그때의 말이 생각날 때가 많다. 저출생 문제가 그가 토로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역대 정부의 온갖 대책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생률이 2022년 0.78명에서 작년에는 0.72명으로 더 추락하며 ‘부동의 세계 1위 저출생국가’ 기록 경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38개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출생률(1.5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암담한 수준이다.
미국 제치고 이민국가 1위에 오른 영국
노 전 대통령 집권기였던 2005년 이후 역대 정부가 각종 출생지원 대책에 쏟아 부은 돈만 200조원이 넘는 상황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재정을 푼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는 이유다. 그렇다고 출생확대 정책을 포기해선 곤란하다. 한국보다 저출생·고령화 위기를 먼저 맞았던 일본 프랑스 등이 혼외 출생자 인정과 보호 등 맞춤형 정책을 통해 출생률을 반전시킨 선례가 있다. 하지만 효과가 ‘함흥차사’인 출생확대 정책에만 매달릴 수는 없게 됐다는 점도 분명하다. 다른 대책을 함께 구체화할 필요가 커졌다. 출생 증가 외에 적정인구를 유지할 대표적 방안으로 해외로부터의 이민자 수용이 꼽힌다.
이민자를 받아들여 인구부족 문제를 해결해 온 대표적 나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신대륙’ 국가들이 꼽힌다. 그런데 최근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구대륙’ 유럽 국가들에서도 이민자 수용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가운데에서도 영국이 단연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전체 인구 대비 이민자 비율에서 세계 최대 이민국가인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오를 정도로 이민자 활용에 적극적이어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월 23일자 기사(Britain is the best place in Europe to be an immigrant)에서 영국이 이웃국가들보다 경제 활력 등에서 앞서 있는 것은 이민자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라고 꼽았다. 실제 신대륙으로 이민을 보내던 나라에서 ‘이민 수용국가’로 180도 탈바꿈한 영국의 요즘 행보는 매우 파격적이다. 6800만명 가까운 영국 인구에서 여섯명 가운데 한명이 외국에서 태어난 이민자일 정도로 ‘이민자 천국’이 됐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역량 있는 외국인들이 영국에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앙정부의 리시 수낵 총리(인도 이민자 2세)를 비롯해 수도인 런던의 사디크 칸 시장(파키스탄계), 스코틀랜드의 총리격인 수석장관에 오른 험자 유사프(파키스탄계), 웨일즈 자치정부의 본 게싱 수반(아프리카 잠비아계)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핵심 행정수반 자리를 모조리 외국계가 차지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정계뿐만이 아니다. 영국인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들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이민 왔거나 이민자의 자녀들이다.
출생지원 일변도 정책 재검토돼야
영국에 능력 있는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차별 없이 받아들인다”는 문호개방 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어서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경쟁력 있는 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은 나라’로 영국을 꼽고 있다는 점이다. 출생 지원 일변도의 정책에 지쳐가고 있는 한국이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그런데 제대로 짚어봐야 할 게 있다. 유능한 외국인들에게 “이민해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를 물었을 때 “단연 한국이죠!”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학영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