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2024-04-03 13:00:02 게재

요즘 우리 증시에서는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논쟁이 뜨겁다.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후진적 지배구조에 기인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논쟁은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자본’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자본’에 ‘주의’라는 단어가 붙었을까. 자본은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사업밑천’에 다름 아닌데,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은 외부로부터의 차입과 주주들의 출자로 이뤄진다. 기업에 자본을 공급하는 주체는 채권자와 주주들인 셈인데, 채권자는 기업에 대해 제한적 이해관계만을 가진다. 채권자들이 기업에 대해 가지는 이해는 정해진 원금과 이자를 수취하는 데 한정되기 때문이다. 반면 주주는 기업의 흥망성쇠가 곧바로 자신이 투자한 자본의 증식 여부와 결부된다.

기업 지배구조 논쟁으로 뜨거운 증시

기업에 자본을 공급한다는 점에서는 채권자와 주주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주주들은 기업의 가치제고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 주주를 기업의 주인이라고 부르곤 한다.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지만 주주들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주식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주식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대중 투자의 시대가 열린 이후에는 더 그렇다.

지배구조의 문제는 소유와 경영의 괴리에서 비롯되곤 한다. 미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패시브 투자의 확산으로 경영에 대한 주식 소유주들의 무관심이 겹쳐지고 있다. 패시브 투자는 개별종목이 아닌 특정지수를 사고 파는 투자 방법론인데, 상장지수펀드(ETF) 열풍이 이런 흐름을 대표하고 있다.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마이크로소프트의 1대 주주는 뱅가드(Vanguard)이고, 2,3대 주주는 블랙록(Blackrock)과 스테이트스트릿(State Street)이다. 모두 ETF가 주력인 기관투자가들이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트프를 골라서 매수한 것이 아니라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S&P500지수나, 미국의 기술주들로 이뤄진 지수에 포함된 종목을 매수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주주가 됐다. 종목들의 묶음으로 투자하다 보니 당연히 개별기업들의 경영에는 큰 관심이 없다.

주식시장은 1인1표의 민주주의가 아닌 1주1표의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이 관철되는 장이다. 보유 주식수만큼의 발언권을 가지는 셈인데 패시브 투자의 확산으로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권 행사에 관심을 덜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감시받지 않는 경영진의 전횡이 나타나게 된다. 스스로의 보수를 과도하게 인상하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경영진의 인센티브를 연동시켰다. 미국에서의 주주행동주의는 경영진의 폭주에 대한 견제로 이해할 수 있다.

낮은 지분 가진 오너의 과도한 권한 행사 문제

일본도 계열이라는 기업집단이 존재하지만 한국의 오너와 같은 개념의 소유주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지배구조는 미국 일본 등과 다르다. 오너로 불리는 분명한 소유주들이 존재한다. 또한 한국의 소유주들은 낮은 지분율로 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전유하고 있다는 특성도 있다. 미국의 지배구조 이슈가 경영진과 주주라는 구도로 이뤄져 있다면, 한국에서는 소수 지배주주와 다수 소액주주의 이해관계 불일치가 지배구조 논쟁의 축을 이루고 있다.

장기적 관점 견지, 신속한 의사결정 등 오너 경영의 장점도 존재하지만 소액주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물적분할, 인색한 배당 등의 그림자도 함께 공존한다. 오너 경영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오너 편향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은 주인에게 고용된 경영진의 입김이 너무 세서 문제라면 한국은 소수 지분을 가진 오너들의 권한 행사가 과해서 문제라는 생각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