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지식재산 거버넌스 다시 짚어보기
첨단기술에 기업과 국가의 미래 생존이 달려 있다. 인공지능이나 양자기술은 바이오 에너지 금융 등 모든 산업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으며 무기체계나 전쟁의 양상에도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각국은 첨단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첨단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확보한 기술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여기에 자국기술을 무기화해 상대국을 압박하거나 국제질서를 주도하려 하면서 세계적으로 기술전쟁이 확산되고 있다.
기술전쟁시대 역할 두드러지는 특허청
기술전쟁 시대에 특허청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독특한 역량과 자원 덕택이다. 특허청은 박사청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공학박사 변리사 기술사 등 전문인력을 심사관으로 보유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개발한 첨단기술정보를 상시로 들여다보며 분석이 가능하다. 기술의 흐름을 읽고 동향을 파악하는 데 최적화된 기술관청인 셈이다. 경제안보이슈를 다루기 위해 장관급협의체로 설치된 대외경제전략회의에 특허청장이 외청장 중 유일하게 참여한다.
기술지식으로 무장한 특허청의 기술경찰은 반도체 핵심기술 유출시도를 차단하는 등 맹활약하고 있다. 기술경찰 수사범위는 올해 1월 특허 영업비밀 데이터보호 등 산업재산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특허청은 지난해 7번째 방첩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산업스파이 색출과 차단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경제안보, 공급망 이슈에 대처하기 위해 소부장특별법(2020년), 국가첨단전략산업법(2022년), 국가전략기술육성법(2023년)등의 법률이 속속 제정되었고 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특허기반연구개발(IP-R&D)이 의무화되는 등 특허청이 해야 할 일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확대되는 역할만큼 성과도 보이고 있다. 일본 반도체 수출규제 및 코로나 유행시 특허 분석을 활용해 반도체소재와 코로나백신의 기술개발과 국산화를 앞당겼다. 기술경찰은 수천억원의 해외기술유출을 차단한 공로로 지난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민간퇴직인력의 반도체심사관 채용은 지난해 인사혁신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업계 호응도 좋아 올해는 배터리로 채용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 2월 산업재산정보 활용촉진법이 공포됐다.
특허 상표 등 산업재산정보는 글로벌 기술·산업 흐름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기업의 사업전략, 정부의 전략산업 도출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이 가능하다. 특허정보는 기술유출을 막거나 전략기술(choke point)을 확보하는 데 활용가치가 높다. 이처럼 기술혁신과 기술안보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 앞으로 특허청의 역할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기능과 위상, 지식재산 거버넌스 새롭게 구축해야
이 시점에서 미래를 대비한 특허청의 위상과 지식재산 거버넌스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첨단기술이 경제와 안보에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면서 이를 차지하기 위한 국가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여기에 미중간 기술패권경쟁은 우리나라에 큰 충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직면한 인공지능 시대 도래,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 등 도전을 헤쳐가기 위해서는 기술혁신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아직 연구개발 비효율성(Korea R&D paradox)과 연간 60조원의 기술유출피해가 있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탄탄한 지식재산의 창출-활용-보호의 기반을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2008년 대통령 직속으로 장관급의 지식재산집행조정관을 두고 있으며, 일본도 2003년 총리 직속의 지식재산전략본부를 설치했다. 우리나라도 과거부터 지식재산처 설치,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기능강화 등 지식재산 거버넌스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으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날로 격화되는 기술전쟁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특허청의 기능과 위상, 그리고 지식재산 거버넌스를 새롭게 구축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용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