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벚꽃정치와 기후유권자들의 분노
“요즘 기후위기에 대해 음모론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보수 진보와 관계없이 기후가 새 화두가 됐다는 걸 부인할 이는 없을 겁니다. 이번 총선만 해도 각 정당별로 앞다퉈 기후공약을 내놨죠. 반길 만한 일인데, 한편으론 씁쓸하더라고요. 재탕 삼탕은 물론이고 앞뒤가 안 맞는 정책도 보이더군요. ‘반짝’ 관심끌기용 공약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죠.”
최근 기후유권자를 자처하는 50대 한 직장인의 얘기다. 직종은 달랐지만 20여년을 환경 관련 업무를 해온 터라 그의 분노 섞인 목소리를 단순히 정치 회의론으로 치부하기에는 진정성이 컸다.
국민의힘은 ‘기후 미래 택배’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기후위기 대처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10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강조했다. 여야 모두 ‘기후인재’ 등용을 적극 홍보했지만 실제 공천 과정에서는 그다지 배려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기후위기 대응 노력들에 대한 무용론과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기후 음모론’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힘을 잃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물론 요즘도 친환경에너지를 둘러싼 불신 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계속되지만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으로 온난화가 가속화한다는 과학적 사실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기후위기로 인한 변화는 정치 수도인 미국 워싱턴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워싱턴 남서부 인공 호수 ‘타이틀 베이슨’은 벚꽃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호수 수위가 올라가고 벚꽃이 이례적으로 일찍 피는 등 온난화 영향을 체감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스텀피’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벚나무 스텀피는 호수 물에 뿌리가 잠긴 상태로 몸통 대부분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도 꽃을 피웠다. 덕분에 코로나 시기에는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시민들이 이름까지 붙여줬다. 하지만 방조제 공사로 5월 이후로는 더 이상 보지 못할 전망이다.
다시 기후정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총선만 되면 정책총선을 한다는 얘기는 늘 나온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게 지난 경험이다. 설사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 때 유권자들에게 미안함을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기대하기 힘들었다.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정당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과연 이번 총선은 어떨까. 정당별로 경쟁적으로 내놓은 기후공약들이 벚꽃이 진 다음에 까맣게 잊혀질 거라는 우려가 이번에는 제발 기우로 끝나길 바란다.
달이 차면 기울듯 꽃잎도 떨어진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체념의 단계로까지 진화한 현장 목소리를 무시한 정당은 봄날 벚꽃처럼 사위기 십상이다.
김아영 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