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논란의 586 후보들에 대한 ‘유감’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586 운동권 출신 유시민 작가가 1985년에 쓴 항소이유서다.
586 운동권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조국을 위해 청춘을 불살랐다. 독재에 항거하다 학교에서 쫓겨났고 고문당했고 투옥됐다. 그들의 헌신 덕에 조국은 독재를 끝냈고 전진해왔다. 후대는 그들에게 큰 빚을 졌다.
1973년생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1990년대 대학을 다닌 X세대다. 한 위원장은 입만 열면 야권 주축인 586 운동권을 향해 날을 세운다. “국민과 민생은 도외시하고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한 위원장의 비판은 더 노골적이 됐다. “대학생 딸이 11억 대출을 받았다.” “10억원짜리 부동산 사서 군대 가 있는 아들에게 증여해 30억원이 됐다.” “이대생이 성상납했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586 출신 야당 후보들의 부동산투기·아빠찬스·막말논란을 겨냥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논란이 된 후보들을 끝까지 안고 갈 태세다. 대세에 지장 없다는 눈치다. 하지만 ‘X세대 여당 정치인’에게까지 조롱 당할 빌미를 준 야당 후보들을 지켜보는 X세대 출신 기자의 마음은 편치가 않다.
야당 후보들이 연루된 논란은 국민의 평균적 도덕 기준에 비춰봐도 ‘낙제점’에 가깝다. “법적 문제는 없다”고 했다. “남들도 다 투기하고 자식에게 물려주고 뒷전에선 나랏님 욕도 하는데, 586에게만 너무 엄격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남들처럼 살려면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 했다. 공직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색 바랜 ‘운동권 훈장’ 앞세워 금배지 욕심 내지 말고 남들처럼 편법을 일삼으면서 내 잇속만 잘 챙기고 살면 누구도 손가락질 안한다.
1990년대 대학을 다닌 X세대는 586 선배들에게 경외심을 품고 있다. 그들의 헌신을 알지만, 그들처럼 살 용기는 자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배들이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기억하며 공직에 도전하는 그들에게 한표를 보태왔던 이유다. 하지만 그들이 ‘X세대 여당 정치인’에게까지 “추잡하다”는 조롱을 듣는 수준의 도덕성으로 추락했다면 더이상 그들의 선택에 동의하긴 어렵다.
2019년 ‘조국 사태’에서 우리는 국론분열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가며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의 수위를 절감했다. 586이 먼저 스스로에게 엄격한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야 기득권세력에게도 똑같이 요구할 수 있다.
엄경용 정치팀 기자